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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키친테이블 노블

김곰곰 2012. 1. 21. 23:08

그저 상상할 뿐이지만, 마루야마 겐지가 불안감이 감도는 회사 책상에 앉아 난생 처음으로 소설을 쓰는 그 광경은 애잔하기만 하다. 이건 고시 공부하듯이 절에 들어가 벼랑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소설을 쓰는 차원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식의 소설 쓰기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블라블라 중간생략 마루야마의 이야기가 아니다.) 머릿속이 얼마나 깐깐하고 복잡한 사람이었던지 결국 신경쇠약에 걸려서 요양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신경쇠약이니 예전에 읽던 심각한 책은 의사가 읽지 못하게 하는 통에 병상에 누워 가볍게 읽을 만한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해 근 2천 권을 독파했다. 그러고 나서 반 다인이 뭐라고 외쳤던가? 2천 권의 추리소설에는 도합 2천 명의 범인이 나온다, 라고 외쳤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반 다인의 복잡한 머릿속을 상당히 무시하는 발언이고 그는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으로서 나만큼 많은 추리소설을 읽고, 나만큼 기술적, 문예적, 그리고 진화적 입장에서 추리소설을 주의 깊게 연구한 사람은 없다" 고 소리쳤다. 뭐, 그렇게까지 소리지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큭. 이 부분이 가장 좋다) 2천 권에 달하는 추리소설을 다 읽은 뒤 병상에 누워 구상해 퇴원하자마자 쓰기 시작한 소설 3권이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추리소설의 고전으로 남았으니 그 정도 오만방자는 견디는 수밖에 없다.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노블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울컥)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끄덕끄덕)














그렇게 한 달 정도 썼을 때쯤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 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중략)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 바라본 밤하늘을, 그 때 느꼈던 따뜻한 고독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블라블라)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한 글자 한 글자가 마음에 그 일 들 을 잊 을 수 없 으 므 로 하고 떨어진다)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결론)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나는 운명도, 운도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오직 내 몸과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인간이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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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