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책 : 위로

같이 먹기 혹은 주는 기쁨

김곰곰 2012. 1. 21. 23:10
아마도 '시키셨다'고 느낀 것은 나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엌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딸을 보고 아버지가 '일부러 시켜주신' 조수 노릇은 아니었을까. 커다란 도마를 앞에 두고 정신을 집중하여 사과 껍질을 벗기고 은행잎 모양으로 썰 때면 학교에서 있었던 싫은 일, 괴로운 일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일들을 잊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평온해지며 이제부터 즐거운 날들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셰프의 조수' 역할을 통해 요리를 만드는 즐거움,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기쁨에 눈떴다.















-
엄마하고 살 때는 거의 요리하는 일이 없지만 혼자 살 때, 일본에 살 때는 자주 매일같이 밥을 지어먹고 국수를 삶고 뭔가 볶고 튀기곤 했다. 그러다 얼굴에 기름이 튀어서 약국가서 화상약을 바르고 돌아와 혼자 우울해하며 그 튀김을 먹은 기억도 있다. 물에 채소를 씻고 젖은 손을 탈탈 털고선 도마에서 채소를 썬다. 그 순간의 집중과 살아있는 풋냄새가 기분 좋다. 달궈진 후라이팬에서 나는 차르르하는 기름 소리도 경쾌하고 가끔 멋지게 부침개 같은걸 뒤짚으면 우쭐해지기도 하고. 마지막에 늘 욕심부려서 참기름 많이 넣어서 음식이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부엌에 있는 일은 즐겁다. 나 먹을려고보단 누구랑 함께 먹으려고 뭔가 만드는 일이 즐겁고 그 희생이 기껍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엄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요리에 수완이 좋은 엄마는 밥 지어먹고 사는 일을 스트레스라고 생각하지 않고 뚝딱뚝딱해낸다. 언젠가 엄마가 요리는 창의적인 일이라 재미있다고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걸 넣으면 이렇게 되고. 그런 기억들.

















-
셰프의 딸, 나카자와 히데코.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