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놔두자니 쪽팔리고, 태우자니 아까웠다. 그 일기장을 보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스무 살을 보냈는지가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진다. 거짓말처럼 젊은 시절의 고뇌와 허무와 마음의 고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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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처녀작이 그 작가의 모든 재능의 함축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 글쎄, 사람에겐 저마다의 빛나는 시기가 정해져있는지도 모르지 하고 추워지기 전에 우리는 각자의 말을 이야기했다. 재능이나 젊음이나 갈수록 그 빛이 바랜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마음가짐, 노력, 성실함이 아닐까. 어쩌면 내가 빼어난 재능이라곤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성실함이라는 덕목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나빠질 수 밖에 없다면 잘 갈고 닦아서 오래 지속될 수 있게 하는 게 서글프지만 최선일지도 몰라. 다른 말로 빠지지만 그래서 나이가 들고나서는 양치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스무 살 무렵의 일기장을 읽는 기분이었다. 이런 소설로 데뷔하다니, 참으로 운이 없는 소설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펭귄뉴스」를 소설집에 포함시킬지, 아니면 빼버릴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고민 끝에 버리지 않았다. 책이 나온 후 다시 읽어보았다. 역시, 조금은 쪽팔렸다. 부끄럽다기보다, 창피하다기보다, 쪽팔렸다. 그 소설은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나만의 생각과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었으니 어디 내놓아도 전혀 부끄러울 게 없었고, 누군가의 시간을 갈취하지 않고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어낸 작품이었으니 창피할 게 없었지만, 쪽팔리긴 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기록은 정지하기 때문이다. 자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쪽팔림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쪽팔림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평범' 이라는 단어를 이마에다 문신으로 새기고 다녀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남자였다.

 

 

딱 하나 잘한 게 있었다.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믿고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에잇, 그럴거면 차라리 보지 말자, 라는 생각으로 현재에 충실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그런 학생으로 지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데 온 힘을 기울였고, 그저 그런 청년으로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하려고 노력했다. 직업을 찾기 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마흔 이전에는 절대로 절망하면 안 되고,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체념해서도 안 되는 거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올해로 100살이 된다. 대단한 나이다. 100년을 산다는 것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100년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가슴에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외할아버지의 나이를 얘기해도, 그저 "장수하셨네" 라는 인사말뿐이다.

 

 

 

 

 

 

 

 

 

 

 

 

 

 하루는 24시간이고, 한 달은 30일이고, 1년은 12달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우리의 목표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성실하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행복해지면 된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낭비해도 괜찮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낭비를 낭비로 느낀다면 곤란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부터 낭비를 생활화해왔다. 시간을 절약한다거나(아니, 그 많은 시간을 왜?) 잠을 줄인다거나(아니, 푹 자도 시간이 남던데) 하는 일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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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위해 잠을 줄인다거나, 일의 완성이 아니라 일의 효율과 완성품의 갯수랄까 그런 수치를 위해서 내가 해야하는 의식주를 줄이는 일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4학년 때 복수전공하면서 1년 동안, 그리고 지금 교보문고에서 근무하는 시간들이 내게는 그런데 이 두개에는 차이가 있다.

 

 

 

 

 

 선택하기 위해 결정하는 방식은 언제나 똑같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버린 것은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취한 것은 아껴 써야 한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혼자 모든 걸 조사하고, 혼자 책임지고, 혼자 기뻐해야한다. 하지만 낭비해도 좋은 사람에게는, 다른 걸 버리고 시간을 얻은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신나는 작업이 없을 것이다. 한 문장 다음에 올 수 있는 문장은 무한대다. 무한대의 가능성 중에서 오직 나만이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과 함께 나눈다'라는 기본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왜 기록하려 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고 싶은 것일까. 아름다움을 기록하려는 것일까, 정보를 기록하려는 것일까, 내 흔적을 기록하려는 것일까.

 

나는 그 답을 찾고 싶었다.

 

 

 

 

 

 

 

 

 

 

 

 이해하지 못하면 눈물은 나지 않는다. 울면 울수록 누군가를 이해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고등학교 때는 어렴풋하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꿈 같은 건 아니었고, 글 쓰는 걸 직업으로 삼으면 어떨까 궁금했다.

 

 

 

 

 

,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무런 재능도 없는 줄 알았다.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 봐 자주 두려웠다.

 

 

 

 

 

 

 

 

 

 

 

놀 수 있을 때는 최대한 즐겁게 놀았어야 했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고, 기회를 주고, 관대했어야 했다. 앞으로는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나 역시 누군가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뭐라도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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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주지 않아. 생각의 회로는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현재에 충실하고 싶어. 어떤 말과 행동으로 근거를 찾거나 엄청난 말로 포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근본적인 생각을 해나가면서 누군가를 떠올리는 이런 기분이 굉장히 오랫만이고 할수 있는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어. 그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 언제나처럼 지금부터도 하나씩 해나갈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나랑 같이 가는 사람도 잘 살펴보면서 같이 가고 싶어. 겨우 혼자 일어섰는데 저만치 멀어져있는 허망함을 이번에는 느끼고 싶지 않아.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무엇을 포기하고 있었다.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포기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한 다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다. 선택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포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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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김중혁. 마음산책.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이라는 부재도 마음에 꼭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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