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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절묘하게도 '지금이다'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이런 내 결정이 과감해 보이지만, 사실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 실제 퇴사를 단행하기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드라마에는 "그만두겠습니다!" 하고 사표를 책상에 메다꽂는 장면이 흔히 나오지만, 현실 속 시시한 봉급쟁이인 내겐 무리였다. 퇴사하겠다고 말하는 건 가슴속에 든 밤송이를 게워 내는 듯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고 지인들과 상담했는데, 누군가는 용감하다 격려했고 누군가는 무모하다 만류했다. 모두가 일리 있는 견해였고 나를 생각해준 조언이었다. 진부한 결론이지만, 결국 선택도, 결과에 따른 책임도 내 몫이었다.

 

 

 

 

 

 

 

 

 

 단순히 방이 못나고 부대시설이 낡은 것이 아니라 '이 방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으리라'는 집주인의 의지가 느껴져서 마음이 침울해졌다. 대단한 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와락 실망감이 밀려왔다. 홈스테이 복불복 게임에서 그다지 좋은 패를 잡지 못했구나. (블라블라) 배움이란 늘 소중한 거지만, 겨우 런던에 온 첫날 '우리 집이 얼마나 좋았나'를 배우게 되다니, 딱딱 부딪치는 윗니와 아랫니 사이로 한숨이 나왔다. 가장 나중에 배웠으면 했던 걸 가장 먼저 배우다니 수순이 잘못됐잖아!

 

 

 

 

 

 

 

 

 

 

 한국에서 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대체로 그냥 감내하는 편이었다. 누군가에게 항의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그리 달갑지 않았고,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불친절한 옷 가게 점원,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는 의사, 음식을 테이블에 내던지는 음식원 종업원 등등. 그 숱한 푸대접을 그저 '다음에 안 가면 되지' 하고 넘겨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나는 남은 열흘가량의 숙박비를 환불받고 당당하게 그 집을 나가게 됐다. 1분도 더 있고 싶지 않은 곳을 나가게 되어 기뻤고, 돈도 돌려받을 수 있어 기뻤고, 항의가 통해 기뻤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뭔가 달라진 것 같아 기뻤다. (블라) 나는 늘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 마련이었는데, 이번엔 투쟁의 승리자가 된 것이다.

 

 

 

 

 

 

 

 

 

 

 

 

이렇게 감각이 섬세해진 분야가 생기면 삶이 배로 풍성해진다.

 

 

 

 

 

 

 

 

 

 

 

 

 

 

 

 

 

 

 개인의 매력 문제인 거다.

 한국어를 쓰는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요설가에 농담하기를 즐기는 재담꾼이었다. 사람에게 재미난 별명 붙이기, 특이한 표현 하기, 낯선 단어 쓰기, 유명한 말 비꼬기, 신조어 만들기 등등 말로 하는 장난은 취미이고 특기었고 삶의 재미이자 심지어 직업이었다.

 사소한 농을 던지고 사람들이 웃는 것, 그것이 내게 그렇게 큰 부분인지 몰랐다. 잉글리시 라이프가 길어질수록, 난 언어적 기근에 시달렸다.

 

 

 

 

 

 

 

 

 

 

 여행이란 상당 부분 자신의 로망을 실현하는 행위라는 사실이었다.

(도쿄에는 이유없이 아련한 도쿄타워가, 부산에는 슬램덩크 닮은 미포 항구가, 포항에는 추운 겨울 아침 쨍한 아침 방파제가, 순천에는 늦가을에 억새인지 갈대인지가, 보성에는 연한 초록잎들이, 제주도에는 어딘가 바다 곁에 네모난 호텔이, 건조하게 추운 그 회색 땅에 사랑하는 사람과 새하얀 흙이 있는 블루라군에 단 둘이, 늙기 전에 새카맣게 타더라도 예쁠 때 사파리에, 모자에 목도리에 두꺼운 잠바 껴입고 뚱뚱해지고 장갑을 껴서 서로 체온이 안느껴지더라도 손을 꼭 잡고 오로라가 보인다던 캐나다에, 삐쩍 마른 몸을 해서 한 여름에 나시입고 가방 매고 긴 치마에 쪼리 신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무언가 만들어 팔면서 베트남에, 젊은 양조위와 왕비가 아직도 남아있을 것 같은 그 엘리베이터 옆 건물. 낡은 듯 붉은 불빛을 키고 있을 것만 같은 정신이 없는 아시아의 어떤 시장의 밤, 그런 것들. 아주 작고 아주 구체적인 것. 여행이 주는 떠나기 전에는 전혀 예측할 수도 없는 부분도 매력적이지만 나는 이토록 사소하고 분명한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 언제나.)

 

 

 

 

 

 

외로움과 그리움은 다르다. 지독하게 외로운데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중략) 나는 때로 왁자한 모임에 초청받지만 타인과의 교분 자체가 피곤해 스스로 약속을 파기하고 둥지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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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홍인혜(루나파크).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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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 나의 이야기로 알아서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9월이구나. 여행 맡고 거의 첫 신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