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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시드니

160630 : 유월의 밤

김곰곰 2016. 6. 30. 22:22
한 달의 마지막 날이고 일년의 반이 지나간다. 더불어 살던 땅의 반대 편에 온지도 오개월에 접어들었다. 막연하게 나마 어떻게 살자고 말은 하고 있는데 그게 과연 최선인지 모르겠어서, 분명히 제법 괜찮은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노력할 마음이 아직 들지 않는다. 장래희망 비슷한 걸 떠올리면 나는 몇 번이나 차선을 선택했다.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해보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하는 것 사이에서 해야하는 걸 선택했다. 해야하는 것에 마음을 붙이고 자부심을 가지고 싶었으므로 할 수 있는만큼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선책에 최선의 노력이 쏟아지지 않는다. 물론 모든 일에는 기본이 중요하니까 하고싶은 일이나 해야하는 일보다 앞서 우선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걷기 전에 뛸 수는 없는 법. 걷기 위해서 오랜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바쁘지 않았다기 보다는 방향이 없는, 아니, 정확히는 잘못된 방향이었음을 깨닫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었다. 내가 아니라 신랑이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몹시 가치 있는 시간이었는가 생각해 본다면 그렇지는 못했다. 좋았던 점은 내가 찾고 있던 천직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았고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었고 아침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아쉬웠던 점은 자주 피곤했고 밤의 시간이 온통 잠으로, 육체적 재충전에 소비된 것이다. 책을 읽긴 했지만 글씨를 쓰는 근육을 잊을만큼 쓰는 일을 기반으로하는 생각이 결핍되었다. 가장 아쉬운 건 생각이 없는 상태로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는 점.

여기서 시간을 더 보내자고 합의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분명한 시간은 오직 일년이다. 그 중에 다섯개나 벌써 써버렸다는 게 새삼스럽게 무척 아깝고 아쉽다. 시간이 간다는 게 이렇게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건 여기에와서 처음이다. 나이와 시간이 정비례하는 것일까. 나이가 주는 한계를 분명한 방식으로, 타의적으로 알게 되어서 시간이 가는 게 더 아깝다. 지금보다 나이가 어릴 때, 일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서 괴로웠다. 틈이 없어야했다. 학교에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행도 계획대로 다녀와야했다. 시간이라는 틈이 무서웠다. 언제나 시간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길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가야한다고 생각했고 봐야한다고 생각했고 어쨌든 빈틈이 없어야 잘 산 것 같았다. 밖의 기억이 훨씬 많다. 자전거를 타고 모르는 길로, 점점 더 모르는 방향으로 멀리 가고 싶었고 더 많은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어서 길에서 하릴없이 사람들을 쳐다봤고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도 피곤하다는 생각도 없이 밤 늦게까지 술도 마시고 밥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었다. 탐욕스러울 만큼 욕심을 내서 책도 읽었다.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가는 길이 성에 차지 않았고 내 탓을 하는 척 했지만 상대방에게 더 바랐다. 아쉽다고 말은 했지만 그 텅텅비는 시간을 감당할 수 없어서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라는 이유를 선택해서 재빠르게 돌아왔다. 그 결정 조차 빨랐다. 무얼하든 늘 부족한 것 같았고 실은 만족하면서도 만족하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압박했던 것 같다. 이렇게 적고보니 그래서 어렸다고, 어려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돌아온 뒤에 그 때 그 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라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생에 한 번 뿐인데 더 즐거웠어야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때 가보지 못한 공간에 대한 기회가 아까웠을 뿐 정말로 그 시간이 아깝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간은 언제나 있는 거라고 생각할 만큼 젊었을지도. 언제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제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라는 건 알게 되었는데 우선이나 차선을 생각하며 선뜻 시간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건 그렇게나 몰아치는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는 나 자신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나에 대한 몇 가지 편견이 생겼다가 깨지고 동시에 있는 시간이라는 게 꼭 바쁘게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서ㅡ거의 날라가버린다ㅡ 다른 의미로 스스로를 압박해야만 할 것 같다. 시간은 내가 뭘하든 무언가 시작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여기서 다른 어딘가로 옮겨버리기 때문에 이번에는 급하지 않게 선택하고, 즐겁게 그 시간을 쓰고싶다. 즐겁게 살고 싶다. 요즘 내가 가장 원하는 삶과 일은 원할 때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싶다. 그 때마다 일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어디서든 일 할 수 있고 싶다. 디디고 있는 땅에서 매번 다른 힘을 받아 새로운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집으로 돌아와서 쉴 수 있기를 바란다. 구체적으로 희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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