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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용서, 짐, 사랑

김곰곰 2012. 1. 24. 19:28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말하지만 마음 안에 미움의 뿌리를 그대로 나둡니다.

 

 용서에 인색한 근본적 이유는 나 자신이 얼마나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 자신이 용서 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남을 용서하고, 사랑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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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한 짐은 아무리 크더라도 무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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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한편으로 무기력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총도, 칼도, 대포도 못하는 일을 이것은 할 수 있습니다. (중략) 오직 사랑뿐입니다. 사랑만이 인간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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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사랑은 때로 고통스럽습니다. 이용당하고 짓밟힐 수도 있고, 배반당할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부드럽고 순결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랑을 위해 태어난 것 같습니다.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은 봤어도 사랑이 싫다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이 없으면 우리 삶은 메마른 사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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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사랑,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 친구와 남과

여. 진실한 의미에서 그것 이상의 범위의 사랑은 맛보았다고 못하겠다. 그것을 더 거슬러 올라간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숙모 고모 등 위로 옆으로 퍼지는 가족에게 느끼는 마음은 필연이고 인연이고 정이고 고마움이고 그리움이지만 미워할만큼 사랑했다고도, 사랑한만큼 잘해준 것도 없으니 말이다. 타인이 베풀어준 것을 느끼지 못할만큼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늘 주변 탓을 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여러 상황이 평범하지 않았고 상냥하지 않았고 함께 할 수 없었다. 약간의 부러움과 함께 서늘한 그 관계 자체로 괜찮다고 생각하며 쭉 살아오다보니 그 서늘함이 어느 순간 차가움이 되어있었지만 내 힘으로 되돌리긴 주제 넘은 짓 같고. 남여의 관계에서, 가족들의 관계에서 장난조로 불평하며 지나가는 것 말고는 사실 나도 아무 노력하지 않았다. 보이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 마음 쓰는 것 조차도. 그냥 짜증을 내고 있기만 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할 생각없이, 내가 변하면 공기의 흐름이 바뀌고 그 흐름을 타고 모두가 좋은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잘못하고 있는 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당당했다. 사실은 엄마 말대로 그게 다가 아니고, 그러면 그게 무슨 가족이겠는가. 받은 것도 없는데 돌려주기 싫다는 심보겠지만 지금까지 함께 웃은 시간이 나보다 먼저 산 엄마와 이모 고모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의 인내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진정한 의미의 용서, 사실 용서라는 게 내가 남보다 위에서 '해주는' 행위이니까 용서하고 말 게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용서 받아야할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그렇게 기고만장한걸지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것은 얼마나 나쁜가. 주제 넘는다던가, 피해보기 싫으니까 피해주지 않는다는 내 삶의 모토가 배워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사는 삶은 후회도 미지근하다. 좋고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고 당장은 뜨거워질 마음도, 더 차가워질 기력도 없지만 한 번은 생각하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언제나 생각해두지 않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아주 사소한 일로도 마음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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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서 온 편지/김수환 추기경 말씀 모음집, 평화신문 김원철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