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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은 깐다.




마늘 까는 일은 성과급이다.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돈을 받을 수 없다.





"그런 게 어디 있어. 하다 보면 요령이 생겨."

 처음에는 무성의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만 일을 해보면 그 말이 정답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마늘을 까는 일에는 요령이 없다.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직접 까면서 몸으로 익히는 게 최선이다. 









 우리 몸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작업이 단순할수록 생각은 많아진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나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손에 밴 마늘 냄새처럼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기회는 노력한 자의 것이다, 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 사람냄새하고 삼성 관련된 만화책 두 권을 보고 주말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라는 질문에 나의 대답은 쌩뚱맞게 한 번도 입 밖에 내보지 않은, 보기만 했던 그 단어. 연대. 연민일 수도 있고 공감일 수도 있지만. 그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공감. 함께 생각하는 것, 남의 일이라고 무시하지 않기. 그것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인정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래도 울고 싶을 때는 마늘만 한 게 없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때는 정말 울고 싶었다. (블라블라) 아, 어쩌란 말이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데 빈 칸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층 더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 생각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어디선가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물체가 눌리면서 내는 소리 같았다. 과육이 뭉개지고 과즙이 흘러나오는, 딱 그런 느낌의 소리였다. 소리는 작고 여리고 은밀하고 숨겨지길 원하고 있었다. 두 칸 다 그랬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고 싶은 사람들이 사용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울 수 없었다. 


+ 삼사십대 가장의 명예퇴직. IMF 때도 남의 일 같았고 자라오면서도, 티비로 아무리 봐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언제나 가장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내 주변에 열살만 많은 선배들은 모조리 대리나 과장, 차장을 달고 있지만 결국은 일하는 아버지, 어머니 일 뿐이다. 일로 승부하는 열정맨도 있겠지만 가정이 있는 초식동물 같은 악하지 못한 사람들일 뿐이다. 아직 젊고 나는 해야할 일이 뭔지 찾는 중이니까 '막말로 짤려도' 라는 가정을 하지만 십년 후엔 나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젊어 노력하지 않으면ㅡ아니 노력한다고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ㅡ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 주체를 회사에서 주는 돈이 아니라 나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언제 어디서든 내 밥 먹을만큼 돈 벌 수 있는, 밥벌이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나저나 저 문장력이라니. 여린 과일이 짖눌려 나오는 소리라니. 




부업은 인기가 좋다. 용돈도 벌고 시간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불경기에는 언제나 대기자가 줄을 서 있다. 








 출근 시간 전이라 주택가에는 사람이 없었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일부러 일찍 나왔다. 사실 간밤에는 한 숨도 못 잤다. 아내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있었다. 설렘만큼 효과가 좋은 각성제는 없다. 










 앞으로는 기록 체크를 습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작부터 욕심낼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 기록을 단축시켜나가면 된다. 



 체중이 문제인 것 같았다. 하긴 몸을 가볍게 하지 않으면 어떤 종목에서도 좋은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다시 다이어리를 펼쳤다. 체중 감량이라고 쓴 부분에 밑줄을 긋고 별표를 쳤다. 


 





세상에는 하면 되는 일과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이건 해도 안 되는 일이 아닐까? 마음이 울적했다. 몸에서 열이 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자리에 누워 있는 동안 깨달은 게 있다. 무리는 금물.




처음부터 목표를 낮게 잡았다. 대신 세운 목표는 반드시 달성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공원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인사부의 송 과장이었다. 정리해고당할 때 나랑 같이 정리된 인물이었다. 스윽, 그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혼자 울고 싶어서 화장실로 달려갔던 일도 생각났다. 두 칸 다 사용 중이라 그냥 돌아서야 했던 그날의 일을 회상하면 지금도 막막하니 가슴이 아파온다. 그날 나는 아픈 가슴을 달래기 위해 직원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셨더랬다.




송과장은 모르는 게 많았다. 기본적인 러닝 자세부터 기구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코치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을 가르치다 보면 자기도 배울 게 많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 진실이라는 건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나 보다.



사람이 비참해지는 건 한 순간이다. 




뛰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 뛰면 서서히 죽는다. 차이는 그것뿐이었다. 더 보고 있어봤자 마음만 아플 것 같았다. 







"너무 긴장하지 마. 열심히 했으니까 떨어져도 용서해줄게."

아내가 다정하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 나도 이런 아내가 되어야지.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남편과 함께 살아야지 





문득, 길을 잃은 아이처럼 모든 게 무섭고 낯설다. 







잘해낼 수 있을까? 솔직히 걱정이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직업은 고릴라다. 






만감이 교차하기도 한다. 출근하는 건 좋다.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사는 게 뭔지. 묵직한 슬픔도 있다. 결국 밑바닥까지 밀려난 걸까? 가슴에 탕탕 대못이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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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강태식.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