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도 특별한 어느 날에야 내가 단지 한 사람이 된다. 그럴 때에는 다른 날보다 행복하게 눈을 뜨고, 그리고 은총이 충만함을 느낀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다른 날들에 대해서 상상해볼 수가 있다. 한 번에 여러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날들. 누군가의 언니였다가 누군가의 딸이었다가 누군가의 아내였다가 누군가의 이웃이었다가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한 날들. 나는 당신의 나, 혹은 그들의 나일 뿐이다. - 생물성, 신해욱. 발문, 김소연. + 김소연 시인님이 써주신 발문이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같은 이름의 평론가가 계신가. 그러나 저 문장은 내가 느끼는 김소연 시인님 같다. 갑자기 평생 하나의 장르만 읽어야 한다면 모국어로 된 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글을 써주었다. 그것도 우리 아빠가 나를 위해서. 김소연 시인이 그랬다, 시는 참 좋은 거라고. 소설이나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야기 라는 걸 감지했을 때는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보았는데 글쎄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그런데 자기도 늘 주변의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고 했다. 그런데 글의 주인들은 늘 만나면 하나같이 기뻐했다고. 아, 시는 참 위대한거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헌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멋지구나 생각했다. 아주 옛날에 아빠가 나를 위해서 글을 써줬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생각했다. 늘 왜 생각과 삶을 그렇게 멀리 두고 있을까? 바코드도 2로 시작하는 품절된 옛날 책. 나는 책을 다루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했고 그렇지만 책을 한번도 그저 하나의..
언젠가 엄마의 화장대에서 필요한 걸 찾다가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하루하루가 오랫동안 일지로 기록돼 있었다. 내 얘기도 많았다. 걱정투성이였다. 걱정을 하면서도 딸을 이해해보려는 앞뒤의 문장들이 있었다. 딸을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여겨주는 마음도 많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하루하루는 적막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청소기를 돌릴 만한 작은 힘만으로 할 수 있는 노동이 어디 또 없을까 매일매일 간절히 원하고 찾으셨다. 일기장을 읽던 자세 그대로 나는 한참이나 눈물을 쏟았다.아버지가 염색을 포기하고 백발이 되신 다음부터, 아버지의 일기장을 훔쳐본 그 다음부터,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되도록 집에 많이 있는 것. 함께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는 것. 귀갓길에는 구멍가게에 들러 아버지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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