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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딸을 이해해보려는

김곰곰 2012. 11. 21. 02:32

언젠가 엄마의 화장대에서 필요한 걸 찾다가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하루하루가 오랫동안 일지로 기록돼 있었다. 내 얘기도 많았다. 걱정투성이였다. 걱정을 하면서도 딸을 이해해보려는 앞뒤의 문장들이 있었다. 딸을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여겨주는 마음도 많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하루하루는 적막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청소기를 돌릴 만한 작은 힘만으로 할 수 있는 노동이 어디 또 없을까 매일매일 간절히 원하고 찾으셨다. 일기장을 읽던 자세 그대로 나는 한참이나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가 염색을 포기하고 백발이 되신 다음부터, 아버지의 일기장을 훔쳐본 그 다음부터,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되도록 집에 많이 있는 것. 함께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는 것. 귀갓길에는 구멍가게에 들러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과일을 사 들고서 아버지방을 꼭 들여다보는 것. 주무시고 계실까 봐 늘 살곰살곰 움직이지만 움직이는 소리를 좀 내어보기 시작했다는 것. 아버지가 내 딸 왔어? 하시며 몸을 추슬러 앉으실 때까지 집 안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낸다는 것. 쓸데없이도 무슨 말이든 열심히 건넨다는 것. 그리고 내 신발, 내 옷보다 아버지 것을 더 좋은 걸로 산다. 그렇게 사드린 스포츠 샌들이며 트레킹화며 등산복이며를 하나하나 받으실 때면,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이것만 입어야지(신어야지)! 하며 아이처럼 활짝 웃으신다.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대에게로 간다

사랑은 그대를 버리고 세월로 간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허수경, 공터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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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의 세계, 새하얀 사람. 김소연.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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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여행 다녀올 때만이지만 내 것보다 엄마 아빠 것을 많이 사려고 하고 하나를 사도 우리 딸이 사줬어, 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물건을 사드리려고 한다. 그리고 돈을 벌게 된 시간만큼 엄마 아빠는 돈을 벌 수 있는 시간과 멀어지고 있고 늙어가고 있다. 나에게는 엄마이고 아빠이지만 남들이 보면 곧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될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인데 마음이 너무 안스럽다. 눈 영양제며 비타민같은 걸 챙겨드린다. 실제로 드시는지 어떤지는 같이 살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은 무거운 마음은 가지고 싶지 않아서 추석이면 햄이든 기름이든 세트, 비누가 생기면 비누 그런 걸 들고간다. 그런 것에 익숙해지시도록 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