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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마음의 쓸쓸한 정오




아무래도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안과 밖을 지운 이상한 마음의 쓸쓸한 정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 밖을 바라보니 안이 보이지 않았다
이 세상은 작고 좁고 캄캄해
이 방처럼 이 방의 상자처럼 상자 안의 편지처럼
편지 안의 나처럼


안을 보여준 적 없으니 내보일 바깥도 없었다
다만 모든 목소리는 고백의 형식


이러다 영영 말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젊은 부부는 자신들의 실패를 믿을 수 없었다
흔들리며 흔들었다
말을 해 나를 따라해봐 내가 네 애비야 이 에미 애비도 모르는


처음이 중요합니다 시작이 전부입니다
나는 목소리를 얻은 적이 없으니 득음을 꿈꾸지 않습니다
다만 공 되어 튀어 오르기를 반복할 뿐
공이 되기를 희망할 뿐
그러니까 탄력적인 사람이라고 해둡시다
탄력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해둡시다


밤마다 내 양들은 늙었다 천천히 나와 함께
에미 애비도 모르는 내가
에미 애비도 없는 내 양들의 목자가 되어
실낱같은 잠에 기대
운명의 실패를 쥐고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마음이 중요합니다 자세가 필요합니다
똑바로 앉아본 적 없는 나에게는 들려줄 풍경이 없습니다
소리 내어 부를 이름도 갖지 못했습니다 다만
가려진 이름 위에 마음을 얹어
침묵의 행간 위에 진심을 얹어


누구도 돌아갈 길은 찾지 못한다
심장 소리를 내어준 이여 지금은
안과 밖을 지운 이상한 마음의 쓸쓸한 정오
곧 아무 일도 없는 그림자가 걸어와
우리를 끌고 갈 것이다


실낱같은 길이 있는 동안은 가야 한다
어떻게든 어디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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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마음의 쓸쓸한 정오, 김선재. 얼룩의 탄생. 문학과지성사











+ 미친듯이 피곤해할 내일이 보이는데도 밤이면 뭔가를 채우지 못한 것 같은 마음에 뭔가를 읽는다. 아주 잘 읽히고 펑펑 울만큼 문장 문장을 적고 싶은 두꺼운 소설을 읽고 싶다.
심장 소리를 내어준 이여, 라니. 시를 써도 모자른 당신만큼 정말 멋진 부름이구나. 이 여백을 여백으로 둘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 더 여유를 가지자. 잘 살고 있는 거다. 결과로 보이고 싶어서 초조해하지 말고 천천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