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그런 학생으로 지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데 온 힘을 기울였고, 그저 그런 청년으로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하려고 노력했다. 직업을 찾기 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마흔 이전에는 절대로 절망하면 안 되고,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체념해서도 안 되는 거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낭비해도 괜찮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낭비를 낭비로 느낀다면 곤란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부터 낭비를 생활화해왔다. 시간을 절약한다거나(아니, 그 많은 시간을 왜?) 잠을 줄인다거나(아니, 푹 자도 시간이 남던데) 하는 일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선택하기 위해 결정하는 방식은 언제나 똑같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버린 것은 돌..
그걸 쳐다본다는 건 청승을 떠는 것처럼 보일 테고 내가 청승을 떨면 식구들이 나를 불쌍해할 것 같아 싫었다. 나의 최초의 자의식이었다. 내 눈엔 영원히 펄펄 날아다닐 것처럼 보이던 할아버지가 동아줄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안간힘을 쓰는 걸 본다는 것은 환멸과 비애의 극치였다. 불쌍한 할아버지, 그때 할아버지에게 위로가 된 건 그들의 신바람이나 덕담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끼쳐오는 타관의 냄새가 아니었을까. 내가 할아버지 두루마기 자락에서 대처의 냄새를 즐겼듯이. 돌이켜보면 기억의 가장 밑바닥, 취학 전 시골에서 보낸 유년기는 온통 칭찬받고 사랑받은 기억밖에 없는데, 그건 내가 특별히 귀염성 있거나 출중하게 태어나서가 아니라 밑에 동생이 없고 생길 가망도 없는데다가 오빠와 십 년이라는 나이 차이 사이에는 삼 남매..
물론 그는 오래전부터 수첩에다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적은 뒤, 밤이면 그 수첩에 적힌 내용을 온전한 문장으로 고쳐 쓰는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공책에 적어나가는 일과 소설을 쓰는 일은 많이 달랐다. 소설 안의 모든 문장은 서로의 인과관계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다. 개개의 문장은 모든 문장의 영향력 안에 있었다. 그 어떤 문장도 외따로 존재할 수 없었다. 짐작하겠지만, 그가 쓴 소설에는 그와 죽은 여자친구가 등장했다. 그는 자신과 여자친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문장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처음에는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다. 억지로라도 문장을 써내려가기 위해서 그는 안간힘을 다 썼다. -다시 한 달을 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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