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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2. 하지만 나는 마흔살이란 하나의 큰 전환점이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무엇인가를 두에 남겨 두고 가는 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그런 정신적인 탈바꿈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는 좋든 싫든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시험해 보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월이란 앞으로만 나아가는 톱니바퀴라고 나는 막연히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정신적인 탈바꿈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마흔살이란 분수령을 넘음으로써, 그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그 나름대로 멋진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했다. 새로운 것을 얻는 대신 그때까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을 앞으로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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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 대학교 도서관에서 열정적으로 하루키의 모든 단편과 장편을 읽어내려갈 때만 해도 나이 먹는 게 두려워서 저 문장이 와닿았던 건 아니다. 막연히 졸업을 하면 무엇이 되야할지, 무엇이 되야한다는 압박감 자체가 두려워서 어느 한 시기에 무엇을 달성해야할지, 그걸 달성하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는 어른이 되는 건 아닐까가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서 밥벌이도 하고 어디가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이력을 가지게 되었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구매팀 선배님 팀장님 본부장님이 와주셨을 때 내가 속해있는 조직과 소속감에 감사했고 이보다 더 괴로울 순 없다고 생각했던 고통도 주었지만 그 시기를 견뎠기 때문에 이 다음에는 그보다 조금 더 괴로운 일이 생겨도 견딜 수 있게 된 것도 좋은 경험이 되었고 엄마아빠에게 용돈을 드리면서 다음 달을 걱정하지 않아서, 아빠를 미워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자주 고마웠던 일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내 마음이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되도록 행복에 가까운 선택을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100% 만족이 아니라 85% 정도 타협이었기 때문이다. 내 삶에 대한 만족도도 그와 비례하는 것 같다.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지만 내가 납득할 수 없으면 행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는 게 뭘까 생각했고 가끔은 마음이 가는대로 그만두거나 멈춰설 수 있는 사람의 삶이 편해보이기도 했지만 부럽지는 않다. 그럴 듯 해보이는 거 말고 진짜 있는 거. 그래보인다더라 그렇다더라가 아니라 해보니까 그랬다고 말할 수 있으려고 악착같이 견뎌서 힘든 날도 많았지만 포기해야하는 이유만 나열하면서 내가 내 몫을 하지 못했다면 여전히 아빠를 미워하고 있었을텐데 아빠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인생에서 없으면 안될 시기였던 것 같다. 내가 견딘 시간이 불리한 것이 아니었고 감사했고 받아들였는데 요즘은 그 마음이 좀 줄어든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버티고 있는 나라서 체계가 없는 건 안되는 거 같다. 오늘은 아무 것도 안함 이라는 계획을 세워둬야 아무 것도 안해도 마음이 편해서 정말로 아무런 체계나 기준 없이 자꾸만 바뀌는 건 내게는 에니그마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데미지를 주는 것 같다. 

 뭐, 길게 썼는데 윤달이 생일이라 4년에 한 번 생일이 오는 팸이 마흔이 되기 싫다고 우는 동시에 마흔이라는 걸 차치하고 생일을 기다리는 순수하고 귀여운 마음이 다 이해가 간다. 그래서 더 부지런히, 그리고 이제는 반드시 무얼 해야겠다 같은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문화권과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더 열심히 관찰해서 그런 일을 하면서 그 일이 나의 삶, 동시에 생계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도서관에서 하루키 소설을 열정적으로 읽어대던 스무 한두세살 때는 1번 문장만 보였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보니 2번 쪽 문장이 더 와닿는다. 이건 허니와 클로버에서 잘 그리고 싶은데 잘 안그려져서 괴로워하던 아오이 유우 역할에 공감하다가 매일 눈 앞에 일만 하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모르겠는 사쿠라이 쇼 역할에 더 공감했을 때랑 비슷한 결이다. 

 오래 살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비극의 여주인공 처럼 단명할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스무살이나 서른살 처럼 어떤 관문 같은 나이에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나이가 안 중요해서가 아니라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너무나 매일같이 다른 누군가와 전 세계가 걱정해주기 때문에 나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서랄까. 나도 모르게 서른은 어느덧 넘어버려 이제 막 서른 한살이 되고보니 못할 건 없지만 확실히 어떤 시기와는 멀어졌다,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9년 정도 더 지나서 마흔이 되면 어떤 것과는 자연스럽게 이별하고 어떤 것은 매일 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마흔은 스무살이나 서른살하고는 조금 다른 무게감이 될 것 같다. 기다리는 나이는 아니지만 어떤 관문 같은 나이. 어지러운 방을 큰 박스 두 세개 사서 대강이지만 정리하는 기분으로 좋아했던 것, 좋아하는 것, 하고 있는 일, 해야하는 일 정도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좋아하지만 할 수 없는 일보다는 하고 있는 일이 제법 마음에 들기를 바랄 뿐이다. 꼭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여도 지금의 나처럼, 백퍼센트 만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절하게 후회하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 처럼. 뭐, 서른하고는 달리 실제적으로 마흔에는 바꾸기엔 힘들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니, 더 부지런히 좋아하는 일과 사람 가까이에서 마음이 기우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태어나서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파트 원 / 대학 입학부터 지금까지 파트 투 / 올해와 내년 이 즈음부터 마흔 넘어 오십까지 파트 쓰리 / 오십 넘어 새로운 세대를 바라보는 때는 파트 포 / 그리고 편안한 시간이 허락되기를, 추억하기를, 감사하며 죽음까지 파트 파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