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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설


사람, 질리게 봐온 사람들이다. 검소함과 추레함의 차이, 실제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의 차이, 속 빈 자들의 끝 간 데 없는 기고만장함. 이제껏 살아왔을,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어떤 삶을 몇가지 행동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뽀득뽀득한 삶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실은 그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도 안다. 볼을 벼리는 추위를 참고, 얼어버린 나뭇가지가 된 손가락으로 찍었을 설원의 한 컷을, 난방 잘된 전시관에서 편히 보는 것. 보는 사람. 참 좋군. 폭염 속에서 우연히 본 어느 농가 처마에 달린 고드름 사진. 저긴 참 좋군. 구석에 수년간 작동하지 않았을 혹은 못했을 녹슨 경운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 그렇지. 알고 있었다. 







신념에 의한 자발적 가난이 아니라 노력해도 벗어나기 힘든 비자발적 가난에 별다른 철학 없이도 청빈한 삶을 사는 것이다. 물론 내 청빈의 주원인이 어머니였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간혹 소설가의 가난을 신념과 예술로 인한 가난으로 승화시켜주면, 조금 낫군, 후후 웃는 것이다. 그러다 내 가난의 포장이 우스워 하하하 터뜨리곤 했다. 








말 걸지 않고 말하지 않는 껄끄러운 고요......

"지루해. 그쪽으로는 따를 자가 없어. 불편하지."

동생처럼 가깝게 지내는 후배, 도하가 한 말이다.

"좀 고요하지."

"언제부터 고요하고 지루가 동격이 됐어? 근데 참 신기하지. 형수 글에서는 그런 게 전혀 안 보이잖아. 존경해."

"존경하는 사람하고 사는 것고 괜찮지."





내가 희망이라고요? 개천 출신이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아내는 이미 저런 상을 가진 후배에게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잘 먹고 잘살았겠네. 그가 살아온 평안한 날을 시기하며 지금의 힘으로 그날을 비웃은 것이다. 네. 짧은 한마디에 그렇게 당황할 거였으면서. 무슨 문제 있습니까? 하는 그의 눈빛에 나조차 당혹스러웠지 싶다. 







내가 할까




"왜?"

"좋아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요. 싫은 것에 이유가 있는 거지. 싫은 것도 그냥 싫은 건데, 그냥 싫다고 하면 되게 지각없어 보이잖아요. 도하선배는 그냥 좋아요."

"어떤 걸 싫어하는데?"

"나 좀 무겁지? 하는 종류의 것들. 무게는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니까.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후략)"







혀 밑에 고인 




싫은 것에 초연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가. 어릴 때 밟은 압정도 기억하는데 어떻게 사람을 잊나. 정이라도 붙여보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운 정마저 가지 않았다. 싫은 것도 관심이라는 말, 나는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런 말을 하는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 악의에 찬 관심은 혐오다. 너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 하는 관심은 살기다. 싫다면서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좋아하는 거 아냐? 오, 당신 현자시여. 조롱 뛰는 심장에 단검이 꽂히기를. 싫다면 싫은 줄 아는 게 낫다. 굳이 미련이나 긍정적인 관심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싫어서 죽을 수도 있고, 싫어서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내가 환영으로 나타나면 그래서 미안했다. 너무 싫어해서. 










신기하게도 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도 유쾌하다. 그렇다고 사안의 심각성마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죽였어요? 라고 영재가 물었다. 가볍게 물었지만 결코 장난이 아니었고, 나에 대한 믿음과 혹시 모를 염려가 깃들어 있었다. 영재의 목소리와 어투가 결합하면서 발생한 화학반응우로 말의 온도가 올라간다. 영재가 따뜻한 이유다. 그런 영재에게 차마, 그래 죽였어, 할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사람이 죽는 게 너무 쉬웠다. 잠시 여기 있던 사람이 저기로 간 것처럼. 죽음은 그것으로부터 구해내려는 자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에게만 어려웠다. 아버지와 형, 내가 죽인 것일지 모르는 아내. 내가 바란 건 오직 하나였다. 나를 그냥 가만히 두는 것. 








보통의 날 우리는 


아버지는 늘 형을 때렸지만 내게는 친절했다. 마치 옆집 아저씨처럼. 그런데 그 순간 형을 그토록 따뜻하게 부르다니. 서운했나? 그랬던 것 같다. 세상에, 아버지는 나를 아들이 아니라 함부로 손대면 안되는 장물로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형은 만만해서 맞은 게 아니었다. 

"이 새끼는 돈도 안되는 게,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녀!"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형은 돈이 안되는 아들이었기에 맞았다. 









그리고 수첩 첫 장에 영재의 글씨로, 사랑해요. 서영재. 라고 쓰여 있었다. 








흰 꽃


"사람들은 원래 나 싫어해요." 




인주는 놀랄 만큼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발문 써."

인주가 내 잔에 맥주를 따른다. 항간에 지적인 인물로 알려져 자신의 한마디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불필요한 특권의식으로 종종 실수는 하지만 변명에는 서툴다. 적어도 염치는 있어 뻔뻔하지 않다. 실수마저 그럴싸한 이론과 현학적 표현으로 박박 우기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인주를 멀리하지 않는 이유다. 인간적이지 않은가. 















괜찮아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아요."

영재가 내게서 떨어져 신발장에 기댔다. 영재가 말한다. 자신이 다급한 상황에 처했거나 내가 그런 상황이 아니면 이렇게 불쑥 찾아오지 말라고. 둘이 통화하고 만날 수 있을 때 오라고. 불쑥 와서 가슴 움켜쥐는 거 불쾌하다고.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의식 너머의 간절함이 나를 막지 못했다. 



"전화기에 전원이 꺼져 있으면, 켜질 때까지 기다리세요."
영재가 현관문 자동키 단추를 눌렀다. 쉬이익. 작은 모터가 돈다. 가세요. 나는 영재의 말을 무시하고 셔츠를 올려 가슴에 입을 맞췄다. 
"놔."
"뭐?"
"나가."












그래서 선배님 이해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요. 
영재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않는 것, 그런 사람, 그런 사람과 존중하며 사랑하고 싶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가 어떤 짓을 해도 손이 나가지 않는다. 차마 때릴 수 없는 것이다. 아니다 싶으면 그저 보내줄 뿐이다. 끝난 사랑 싫은 사랑은 반드시 몸으로 드러난다. 눈이 보기 싫어하고, 귀가 듣기 싫어하며, 심장이 숨쉬기를 거부한다. 그러니 작은 화에도 손이 나갈 수밖에. 혹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손을 내밀지 않는. 영재는 자신이 벌써 내게 그런 존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수현아."
"네."
"이제 자주 와라."
"예."
오래오래 사십시오. 어머니도 나도 징글맞게 살아왔다. 잊고 싶었던, 잊은 척한, 그래봐야 몇 줄로 정리되는 날들. 다시 태어나면 그떄는 잘 살 수 있을까. (중략) 내가 가지 않은 모든 '만약'의 길은 후회와 미련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삶을 지키며 잘 살아내길 바랄 뿐이다. 살아 있는 당신에게 행운이 가닿길. 















에필로그


선배님을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생각 좀 정리하자 해서 갔는데, 선배님이 전화를 했어. 목소리 들으니까 보고 싶어 미치겠더라. 곧장 달려가고 싶은 거야. 사랑은 매우 비합리적인 감정이었어. 대책 없이 몸과 마음이 막 달려가는 미친 현상이야. 이거다 하고 정의할 수 없는 게 사랑이더라고. 








"그 무서운 눈 속에 나를 걱정하는 눈이 하나 더 있어. 도망가, 도망가, 그러는 것 같더라고. 그게 보통 정신력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






그리고 얼마 뒤, 무당 할머니가 영재에게 해준 말이 있다. 뭐든 너는 못 건드리니까 똑바로 보고, 나가,라고 해라. 그것도 못하겠으면 보기만 해. 그날, 그 말이 섬광처럼 떠올랐고 그 말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썼네! 똘재야, 나는 무슨 냄새 나냐?"
"알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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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김려령. 창비. 






+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읽어낸 책. 잘 썼다는 사람도 있고 못썼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유명세에 반비례하여 나는 이 책이 이 작가의 첫 책. 워낙 한 권을 다 읽어내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우선은 다 읽어낼 수 있도록 썼다는 데 한 표. 그래서 언제까지 기억날진 모르겠는 점은 영화 마미와 비슷한 느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문장들이 내 안에 남아있다면 뭐 그것만으로도 좋은 소설. 과연 좋은 소설이란,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만 결국은 사람처럼, 어느 때에 만날 수 있거나 만날 수 없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읽히지 않거나 괴팍했지만 계속해서 무언가 남아있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