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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27 화 : 남편의 방

김곰곰 2015. 10. 28. 10:17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로마서 8, 24


남편이 쓰던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어두운 방에 새근새근 남편 잠자는 숨소리를 듣고 누워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방의 천장이 무한대가 되고 장롱 위의 사소한 짐들이 어마어마하게 커보이고 책꽂이 가득한 대학 시절의 책들이 쿰쿰한 냄새를 더했다. 3-4일 정도 있으려고 들어온 시댁이니까 하얗고 말끔한 신혼부부 방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 일정이 당분간 알 수 없는 무기한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덜컥 심란해졌다. 애초에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는지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서 '대우'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과연 어떤 대우를 기대한 것이고, 나는 그에 합당한 며느리 다운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도. 자신있게 나는 그러한데 이 처우가 서운하다고 말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신랑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었는데 너저분한 방처럼 인생도 그저 그렇게 살아지는 건 아닐까 하는 앞선 헛 생각에 제 풀에 서운해졌다. 자는 줄 알았던 신랑은 정말로 잠귀가 밝아서 토닥여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해결책도 제시해주었다. 기대 없이 서운함 없이 안주고 안받고 있는 그대로 지내는 게 여기에선 좋은 방법인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커피 한 잔 하고 간단하게 아침도 차려 먹고 영화도 한 편보고 오후가 될 때까지 빨래, 청소, 방 배치 바꾸기를 했다. 신랑이 혼자 지내던 침대는 매트를 하나 더 마련해서 넓다랗게 폈고 컴퓨터 책상도 의자를 빼고 좌식으로 만들어서 옆에서 나도 노트북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나를 위해서 가능한 한 모든 걸 해주려고 하는 착하고 지혜로운 신랑이 있구나, 하고 감사한 하루. 우리가 가진 건 부족하지만 앞으로 시간이나 돈이나 무언가 우리가 컨트롤하기 어려울 만큼 많아지거나 적어져도 둘이 잘 해쳐나갈 수 있기를. 보이는 것을 희망하기 보단 더 값지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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