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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신랑 생일이었다. 결혼하고 맞는 두번 째 생일이었고 같이 보내는 여섯번 째. 우리는 참 생일에 뭘 안하는 건지 내가 기억력이 나쁜건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 작년엔 호주에서 함박 스테이크 저녁을 해서 네 명이 나눠 먹었고 낮에는 일을 쉬고 둘이 오랜만에 시티에 다녀왔었던가. 올해는 다시 서울, 밖은 무덥고 집은 시원했다. 전날 오랜만에 새벽까지 누워서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날이 새고나서 잠이 들었다. 늦게 일어나서 미역국, 차돌박이 냉채, 호박잎 쌈밥을 먹었다. 같은 날이 생일인 쌍둥이 누나에게는 아이를 키우느라 먹어보지 못한 아이스크림 키프트콘을 하나 보내고 어머님께는 이렇게 더운 날 아이 낳느라 정말로 힘드셨겠다고 경의를 표했다. 장에 문제가 있어서 조금씩 네다섯 끼를 먹는 게 좋다는 서방을 위해서 밥 먹고나서는 라테도 내어주고, 친구가 보내준 기프트콘으로 케이크도 두 개나 사먹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딩굴거리며 내일부터는 조금 부지런하게 살아보자고 다짐한 33세 무직 부부였다. 저녁은 그럴싸하게 생긴 전자레인지용 파스타였는데 파리바게트는 반성하라! 로 갈음.

이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급한 마음도 불안함도 없지만 직업과 관련해서는 막연하게나마 이제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잘 할 수 있겠지.

며칠 내내 짜증이 많이 났는데 고요하게 주말을 지내고나니 사라진 듯 하다. 없어서 짜증스러운 건 앞으로 채워나가면 되는거니까. 그 순간은 지났고 생각해보면 인생에 깊게 각인될 순간도 아니었다. 이런 깨달음을 주기에 적절한 하나의 사건이었을 뿐. 그러고보니 생일이나 기념일에도 너무 무심했는데 앞으로는 서로의 생일이나 큰 이벤트가 생길 때마다 인생에 필요한 것을 사는 것도 좋겠다. 그런 의미로 서방은 좋은 벨트랑 지갑 하나를 기회가 생기면 사줘야지. 나는 올해 좋은 구두 하나, 몸에 잘 맞는 검은색 원피스 하나를 사야지. 생각해보면 몇 해 동안 일체의 형식적인 것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지냈다. 회사에서 격식을 차린 옷을 입을 필요도 없었고 가족끼리도 부러 그런 일은 없었다. 아주 잠깐 경조사가 있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한 여름에 체면을 차릴 일이 없었구나.

나 뿐만 아니라 둘러보면서 살 여유를 가져야 될텐데 지금은 넌지시 모른 척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비난 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 서운함을 받아내는 것 조차도 버겁다. 사실 시간적으로 바쁜 건 아니지만 만족할 만큼 스스로의 일상에도 충실하지 못한데 그 안에 다른 것을 끼워넣으면 아무 것도 없이 이 시간이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의도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혼자살 던 때 조차 언제나 너무 많은 사람에게 내 시간을 할애해왔다고 느낀다. 결혼하고 멀리 떨어져 둘 만 있던 때가 외롭기 보다는 평온했던 것도 어쩌면 나에게는 시간과 나의 일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돌아와서도 친구도 그래서 안만나게 되는 것 같고 특히 친정. 뭔가 불안한 마음을 덮고 평온하다. 그 이유가 뭘까? 엄마의 외로움과 분주함이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 신랑과 함께 움직여야해서, 공연히 공정해지려고 하다보니 더 더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