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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시 서울

8월 18일 지나가다

김곰곰 2017. 8. 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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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나고 나니 거짓말 처럼 공기의 온도가 낮아졌다.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고 낮엔 쨍하고 날씨가 정말 좋다. 하늘도 파랗고 구름도 하얗고 미세먼지도 없다. 막바지 초록빛이 선명한 여름이 끝나가는 게 아쉬울 만큼 아름다운 날들이다.

학원에서 어제 2시간, 오늘 4시간 연습을 하고 엄마랑 2시간을 더 연습했다. 잘 아는 길이라 훨씬 수월한 거 같다. 십만원 아낄려고 모르는 동네에 갔으면 어쩔 뻔 했나 하는 생각이 도로주행 하면서 더 많이 들었다. 천천히 다니기는 해도 오늘은 6시간이나 운전을 했더니 정말 피곤했다. 십년, 아니 이십년 동안 나랑 동생을 위해서 운전해준 엄마, 아빠 결혼하고 줄곧 특히 여행 내내 운전해준 서방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생색내지 않고 무언가 하는 일이 있나, 아마 없는 것 같다. 기꺼운 마음으로 하지만 언제나 나는 이만큼 했다고 말하는 유형의 사람인 것 같아서 반성했다. 근래 내 생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운전면허학원에 가는 일인데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예전에 학원 다녔을 때는 운전이라는 걸 대체 어떻게 하는건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는데다 도중에 학원까지 사라져버려서 남들 다 하는 것 중에 나는 아마도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일 중에 하나였는데 역시 남들 다 하는건 나도 할 수 있는거였구나. 하루에 한 두가지 일만 충실히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보니 기왕이면 두번 돈 들이지 않으려고 남들보다 더 긴장하면서 다니는 거 같다. 이제 화요일이면 끝이려나.

​​​​​​운전면허 학원은 익숙한 동네의 산 중턱 쯤에 있는데 지금은 여름이라 학원을 둘러싼 모든 곳이 푸르다. 생각해보면 나는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동네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모든 게 고만고만해보이기 때문이다. 뭐든 티가 많이 나는 건 싫다. 불행은 잘 보이지 않도록 숨어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동네. 해가 지는 시간에 아기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고 빈자리가 없는 파란 버스, 빨간 버스에서는 일을 마친 사람들이 내린다. 출산율이 낮다는 말이 무색하게 주말이면 성당에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그 아름다운 소란이 기분 좋았다. 다들 살기 힘들어도 아이 한 두명 정도는 낳아 기르기에 이 도시는 덜 야박한게 아닐까, 아름다움이 있는 거리는 아니지만 모자람이나 부족함이 없었고 적당히 새것인 동시에 오래된 곳이었다. P도시 처럼 높고 위압적인 주상복합도 없고 G도시 처럼 높은 언덕도 없다. 오래된 곳에 새로운 사람들이 터를 잡고 저 멀리 출근을 하고 돌아오는, 쉴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나도 여기라면 서울로 회사를 다니고 돌아오고 비가 새거나 보일러가 고장나지 않는 집에서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계절도, 마음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