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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해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어요." 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어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요." 라는 의미다.






(중략) 자괴감을 가지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침마다 조깅하기, 한 달에 두 번 봉사활동 거기,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것 취미로 시작하기 등 뭐라도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이런 일들이 점점 쌓여 가면 먼저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저 친구는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반드시 하고 마는 캐릭터야!
자고로 극기는 캐릭터로 굳어진다. 이것이 주변의 긍정적인 평가와 신뢰로 이어지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것,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매력을 가진 사람에게 강하게 끌린다. (블라블라 결론) 나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들이 마일리지나 포인트처럼 쌓이게 되면 '자존감'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은 더욱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왜 책이 좋고 일본어가 좋고 옷입기가 좋고 여행이 좋고 글쓰기가 좋은지 아마 같은 이유일 것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내 마음이 가는 일이었고 좋아하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비교적 꾸준히 해왔다. 나에게 굳어진 극기의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신체는 단지 겉으로 보이는 외형상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심리적 경험을 포함하고 있다.  여성의 신체에는 신념이나 느낌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나를 감싸고 있는 나의 껍데기. 나의 외모와 체형과 머리모양과 피부와 복장. 이것은 단순히 정말 단순히 껍데기일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다. 핑계는 필요없고 보이는 게 다니까 만족하고 싶다. 정말 없어보이지만 정말 솔직하게 피부가 깨끗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무게에 좋아하는 옷을 입고 머리결이 좋으면 그야말로 행복하고 자신감이 있다. 누군가 귀엽다고 장난이라고 한마디해도 쭈뼛거리게 되는건 껍데기라는 건 당장 바꿀 수 없기때문에.)







'비교'라는 필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 방향을 결정하려는 여자들의 본성 때문다.

(남과 비교한다. 매일 누군가와 비교하는 편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아니 2년 전에만해도 거의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기본적으로 사소한 비교 외에는 안하려고 노력하지만(쟤 다리가 얇아 내 다리가 얇아? 같은 것) 가끔 나도 모르게 속물적인 비교본능이 꿈틀거려서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닌 스물일곱 직장인.)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라는 말에는 돌아갈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의 의지를 재확인할 수밖에 없는 공허함이 담겨있다. 어느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퇴행적인 욕망만 되새김할 뿐이다.
(그땐 그 방법 밖에 몰라서 그 방법으로 열심히 살았으니까 돌아갈 생각은 없어. 돌아가도 지금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을걸. 훗 시간의 축적성이란. 하지만 지금의 상태에 불만족함을 나도 예전엔, 라는 말로 하고 싶진 않다. 한심하잖아 스스로도. 지금이라도 하면 되는걸. 그런데도 하고 있으니 참..쯧.)









 완벽주의는 '어떤 일이나 상황을 빈틈없이 해내길 바라는 마음' 이지만 심리학에서는 그 이상을 지칭한다. 필요한 것보다 더 높은 기대치를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 즉 현재 체중이 55kg인데 한 달 후에 45kg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바로 신체에 대한 완벽주의다. 








 
 비교하는 삶의 가장 큰 부작용은 타인에게도 관심을 쏟아야 하므로 정작 자신을 돌볼 에너지와 시간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피곤한 날에는 '많이 먹고 힘내기' 보다 '덜 먹고 힘내는 것'이 건강에 좋다. 그리고 과식은 무엇보다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덜 먹은 날에는 뿌듯한 것인가. 무언가 생각하고 생각한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주는 거겠지. 나는 요즘 오후 네시의 군것질을 안한다. 누군가 먹을 것을 주면 일단 냉장고로 서랍으로 넣는다. 전에는 호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라도 바로 먹었다. 구매에 오고 그랬으니 그게 얼마인지. 하지만 자꾸 몸도 무겁고 그러니 기분도 별로고 피부도 나빠지고 살도 찌는 것 같고 말이지. 그리고 또 하나는 커피를 많이 줄이고 있다. 매실하고 오미자를 마신다. 물도 하루에 적어도 590ml는 마시고 있고. 먹고 죽자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자 남신경쓰지 말고 나만 즐겁게, 의 결과가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사람에게는 내일이 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인간은 자신이 외롭다는 걸 고백하거나 인정하는 데 무척이나 서툴다. 관계에 대한 만족감과 외로움은 '관계의 양'보다 '관계의 질이나 대상'에서 결정되기 때문다.
(중요한 건 솔직함과 case by case 균형감.)






초콜릿 한 조각이나 술 한 잔이 땀 한방울보다 더 치유력이 뛰어날 수 있다. 괜한 자책감으로 자신을 괴롭히거나 아픈 마음에게 부담까지 더해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이유는 신체적인 건강과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가. 우리 몸에게 신호를 보내고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는 건 소프트웨어, 즉 정신이다. 정신이 음식을 먹게도 만들고 먹지 않게도 만든다.






Pet Ownership


 애완견의 특징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결코 날 떠나지 않고, 더 열심히 나에게 파고든다. 애완견의 표정과 눈을 보라. 당신만 의지하고 따르겠다는 감성의 전이가 넘쳐흐른다. 애완견은 항상 주인과 놀아준다. 같이 산책하고 공놀이도 하고 적극적인 스킨십도 마다하는 법이 없다.
 남자의 '무뚝뚝함'은 곧 '강인함 혹은 남자다움'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다. 무뚝뚝함은 그냥 무뚝뚝한 것이다. 여성들은 사회적 거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누군가가 끝까지 나의 편이고, 내 이야기를 공감해 주는 것에서 마음의 안정감을 찾는다는 얘기다. (블라블라 결론)
애완견 같은 남자든, 우리가 키우는 애완견이든 결국 '나와 공감하고 함께하는 대상'에게 정서적인 위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람이나 강아지는 스킨십이 가능하고, 눈빛만으로 소통하고, 품을 수 있는 대상이다. 그리고 이런 대상은 세상을 살아가는 절대적인 이유 혹은 중요한 동기가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바로 애완견의 미학이다.






우정을 정신건강 측면에서 말하면 '공감하며 위로를 주고받는 사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비만은 견딜 수 있어도 친구로 인한 상실감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더 좋다. 스토아보다. 쾌락과 정신적 어쩌고 하는 단어로 규정되었지만 몇 권인가 읽으면서 정말 에피쿠로스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쾌락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진정한 쾌락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사람들을 관찰했다. (블라블라) 그러나 결국 그가 발견한 인간의 쾌락 요소는 우정, 자유, 사색이었다. (그렇지 그렇지 정말이다!)
니체처럼 까칠한 철학자도 에피쿠로스를 좋아했는데 둘은 특히 우정에 관한 생각에 많이 공감했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본질적인 쾌학이란 '나에 대한 가치를 느끼는 일'이다.

건강한 자아도 사랑에 가까운 감정보다 우정에 가까운 감정일 때 더 건강하다.




나는 사랑을 상대방에 대한 '관심 어린 관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좋았나보다.)
관심 어린 관찰에서 기다림은 필수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각자 비밀의 방에서 비밀을 꺼내 공유할 때 동질감을 느끼고 사랑과 우정의 향기도 진해진다. 그러나 허기진 공복감에 기다리지 못하고 관찰이 아닌 비밀을 캐내는 수사관이 될 때, 스스로 실망하고 방어를 위해 거짓된 자아로 상대와 대면하는 비극이 생긴다. (중략) 그래서 기다리지 못한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고 않고, 꽁꽁 닫아버린 상대의 마음만 탓한다. 이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소외감이다. 소외감은 누군가에게서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 걸 말한다.



인간은 자신에게도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는 존재다. (자신을 믿지 못함으로서 상대를 믿지 못하고 그런 방법으로 사랑을 놓치고 관계를 무너지게 만드는 게 첫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신이 상대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면 그건 상대를 위로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싶은 걸 확인하려는 이기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가 말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할 게 아니라 '누군가 한 가지씩 비밀은 있지.'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가족이고, 연인이고, 단짝이라도 그들 역시 자신을 지키고 싶어하는 하나의 주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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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콜릿과 이별 중이다, 윤대현 유은정. 21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