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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단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어문장. 이런 문장은 내 가슴으로 직접 파고든다.

역시 뜻밖의 냄새가 숨어 있다. 이게 뭘까, 나는 생각했다. 바나나 숲에선 바나나 향기만 나야 한다. 그 기대가 어그러지면,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질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 맞아떨어지는 일이 없다. 과거에 인질이 되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건 질색이다.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말이 인질이지, 그냥 친구처럼 지내."
 내가 고민에 빠져 있자, 스티브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까다롭지 않은 인질범이었다.
 그의 영어는 간결하고 분명해서 듣기 좋았다. 스티브는 나보다 열살이나 많은데 권위를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어수룩한 동네 형 같았다. 마리화나를 재배한다는 이유로 괜히 터프한 척하지 않았다. 그는 명상이 좋아 이 길을 택했다고 한다. 케첩통을 피우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유기농이야." 자신의 작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토익 만점을 받은 친구도 "영어는 타이밍이야" 라고 말했다.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제한시간에 200문제를 풀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였다.
 영어에 있어서 타이밍이라는 건, 상대방이 낫을 들었을 때 "낫 휘두르지 마"라고 즉각 내뱉는 걸 의미한다. 상대방이 갑자기 꽃을 들어버리면, 그 말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꽃을 든 사람에게 낫 운운하는 건 결례다.



 타이밍.
 그건 서울에선 깨달을 수 없는 교훈이었다. (블라블라) 학원에서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생들의 엉터리 영어를 다 받아준다. 타이밍이 어긋나든 말든 미소를 띤 채 기다려준다. 그래서야 훈련이 되지 않는다. 평생 가봐야 제자리걸음이다.
 실전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다들 어학연수를 떠났던 거로군, 나는 생각했다. (중략) 친구들에 비해 나는 너무 늦게 한국을 떠난 감이 있다.
 식은 홍차를 마신다. 급할 건 없어, 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늦은 만큼 분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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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토익만점 수기, 심재천. 웅진 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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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날개에서만 말고 실제로 내 옆에서도 살아있는 사람으로 직장 생활을 하다 전업 작가가 된 사람을 만나 보고 싶다. 누구라도 되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내 주변에는 글을 몹시 사랑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지만 매일 적고 있는 그녀들이 몇 있다. 얼마간의 돈을 벌긴 하지만 돈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궁리를 쏟아 부으며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도 있다. 아직 입봉까지는 멀었는지 가까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성실하게 시나리오를 쓰는 친구도 있다. 그런 세계에 입문한다는 건 어떤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