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부모님의 뒤를 잇고 싶지 않아 엄청나게 절약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다는데, 그의 생활은 실제로 그런 느낌이었다. 대학 시절에 돈을 모아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지 않으면 싫으나 좋으나 롤 케이크를 구워야 하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절박함이 이었다. 앞날이 정해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고단함이 그의 아르바이트 인생에서 묻어났다.








"나는...... 나는 정말 마음씨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알아."

길거리를 같이 걷기만 해도 그의 반듯한 성장 과정과 고운 마음씨를 금방 알 수 있었다. 가령 공원을 거닐 때,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빛도 흔들린다. 그러면 그는 아스라한 눈으로 '아, 좋다.' 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린아이가 넘어지면 '저런, 넘어졌네.' 하는 표정을 짓고, 그 아이를 엄마가 안아 일으키면 '아, 다행이다.' 라는 표정이 된다. 그런 순수한 감각은 부모에게서 절대적으로 소중한 무언가를 받은 사람의 특징이다. 

"그러니까, 이대로 흐름을 따라 그 집에 그냥 있으면 점점 더 마음씨 좋은 사람이 될 거야."

"그게 뭐 어때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건 아닌데, 그건 진짜 마음씨가 고운 게 아니라고 생각해, 난. 평화롭고 돈과 시간이 있으면, 누구든 타인에게 친절해질 수 있잖아. 그런 것과 마찬가지야. 지금 이대로 가면 그런 때만 고운 마음씨를 쓰게 될 거야.그리고 내 안의 어느 한편에서는 어둡고 이상한 것이 자라겠지. 어쩌면 얄팍한 친절함으로 평생을 끝낼 수도 있고. 나는 원래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니까, 가능하면 그 마음씨를 키워 나가고 싶어. 어두운 쪽 말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나치다 싶게 성실했고, 무언가 꾸준히 계속하는 것을 좋아했다. 서예는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데다, 주판을 그만둔 것도 바로 얼마 전이어서 암산이 주특기, 게다가 도예는 10년이나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생각했다.

장례식에는 할머니가 만든 갖가지 음식을 먹고 때로 의논거리를 들고 오기도 했던, 당시에는 젊었던 할아버지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줄줄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게에서 데이트를 했던 얘기, 실연하고서 가게를 찾아와 할머니가 만든 새우튀김을 먹었다는 추억담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는 돌아갔다. 그렇게 타인의 인생에 진정한 의미의 배경이 된다는 게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가게의 비품도 날마다 사용하고 날마다 닦아 주면 깊은 색을 내게 된다. 그런 식으로, 매일 그저 가게에 나와 메뉴가 바뀌어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요리를 만들었을 할머니의 인생도 무척이나 깊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보다 더 나은 것은 이 세상에 없지 않을까, 하고 감동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 무렵 나는,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어도 이와쿠라를 무척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젊음밖에 가진 게 없는 나는 그들이 서로에게 점점 매료되어 가는 것을 도무지 막을 수 없어, 그저 슬픈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가게가 한가할 때, 그 얘기를 이와쿠라에게 넌지시 한 적이 있다. 농담처럼 말했을 뿐인데, 이와쿠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술수에 걸려드는 남자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테니, 헤어지길 잘 했어."

그 나이 또래의 남자치고는 적절한 의견이라, 나는 '이것 봐라.'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그 말은, 연애로 쓰라린 상처를 입은 내게 훗날까지 큰 힘이 되었다. 










(그 앞의 부분도 꽤 마음에 들지만) 그리고 우리는 오리털 이불을 덮고서 따뜻하게 서로에게 기대어 잠들었다.

"사실은 이렇게 사람과 딱 붙어 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전골을 먹는 것보다는."

자기 전에 이와쿠라가 그렇게 말했다. 

"돌아갈 집이 있는데도, 사랑받고 있는데도 외로운 게, 그게 젊음인지도 모르지."






겨울날의 오후, 갖가지 식재료를 사 담은 하얀 봉투를 잔뜩 껴안고서 편안한 평상복 차림으로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남 보기에는 신혼부부나 동거 중인 귀여운 커플 같았으리라. 하지만 우리 둘은 조금 슬프고, 이제 곧 헤어질 일만 남은 사람들이었다.

뭘 해도 무척 즐겁고, 조금 슬펐다.








그의 얼굴은 미래를 향한 활기에 차 있었다.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떄와는 달리, 미지의 세계를 보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성실하니까 가서도 아마 공부를 참하게 잘하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시샘하거나 섭섭해하지 않고,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일에 지쳐 점차 흐릿해지는 그를 보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았다. 
















"점점 좋아지는데, 헤어지는 게 정말 아쉬워."

이와쿠라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중략)

잠까지 같이 자면 슬프니까 밤늦게 돌아가기로 했다. 이와쿠라가 바래다 주었다.








뭘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내 인생에 넌더리를 낸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게 나라고 나는 몇 번이나 나 자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도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 








 어른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런 의미 없는 시간. 친한 누군가와 코타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조금은 따분해하면서도, 자기 의견을 고집하느라 껄끄러워지는 일 없이, 가끔 상대의 말에 감탄하면서 끝없이 떠들거나 침묵할 수 있다는 것이, 섹스를 하거나 한바탕 싸우고 뜨겁게 화해하는 것보다 훨씬 귀중하다는 사실을, 그렇게 시간을 두고 충격적으로 깨닫는 일은 절대 없었으리라. 

 지금 생각하니 후자가 중요하다 여기는 것이야말로 젊음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서로의 귀중함을 몰랐을 테고, 또 무의식중에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깨달았던 것이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막대기와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방식으로 우리 관계의 핵심에 숨겨 두고서, 서로가 하루하루의 생활에 몰두하리라. 그리고 밤이 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고, 때로는 섹스를 하고, 그렇게 나이를 먹어 가리라. 몸만도 마음만도 아닌 그 관계를 키워 나가면서, 둘만의 공간이 커져 간다. 

 우리는 니스를 시작으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우리가 잠자리에서 잘 맞는다는 것을 새삼 깨우치면서 많은 곳을 여행하리라. 


























-

막다른 골목의 추억, 유령의 추억. 요시모토바나나.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