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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 남자네 집, 만큼은 너무나 남아있는 소설이다. 그 덕분에 성과 신이라는 평범한 학교의 그 골목들이 생경하게 빛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오늘도 '좋다'와 '싫다' 사이에 좋지 않다, 싫지 않다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할 순간이 있었는데 둘로 명쾌해질 수 없다면 이분법으로는 나눌 수 없는 수많은 스펙트럼을 찰떡 꾹꾹 눌러 썰듯이 많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소설가인가



당연히 옹색하고 구질구질했다.


내성적인 아이가 흔히 그렇듯이 상상력으로 고독을 달래는 꿈 많은 아이가 되었다.



우리 식구 중 나는 유일한 노동력이었고 꽃다운 스무 살 대학생이었다. 여자였지만 젊은만으로도 더럽고 잔혹한 세월의 좋은 먹이였다. + 이바라키 노리코/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략) 내 눈엔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자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박해를 당하면서 그들 앞에서 벌레처럼 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때 내 마음에 섬광처럼 번득이는 게 없었다면 아마도 그 시절을 제정신으로 버텨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번득이는 섬광은 언젠가는 저자들을 등장시켜 이 상황을 소설로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예감만으로도 그 인간 이하의 수모를 견디는 데 힘과 위안이 되었다. 훗날 소설로 쓰기 위해 낱낱이 기억하려 했고 몸은 기면서도 마음은 최소한의 자존심이나마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려고 했다. 그 극한 상황에서 왜 하필 소설이었을까. (블라블라)

이야기가 지닌 위안과 치유의 능력에 대해 은연중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 섣불리 표현되어선 안 된다는 걸 차차 알게 되었다.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기 때문이다. 

증오가 연민으로, 복수심이 참고 이애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아주 잊지 않았기 때문에 쓸 수 있었고, 그 후 오늘날까지 꾸준히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쓰지 않고 보통으로 평범하게 산 동안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 먹은 마음, 초심은 나도 모르는 나의 깊은 곳에서 우러난 운명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 하정우 힐링캠프 장독대 뚜껑론 이던가.


, 이야기가 지닌 살아낼 수 있는 힘과 위안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 내가 소설, 그 중에 좁게는 일본문학을 읽으며 받았던 치유. 








이야기의 힘


선생님은 엄마가 생각해낼 수 있는 상상력의 한계


젊다는 건 (블라블라)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부조리에 고뇌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











시작과 동시에 끝나버린 스무 살


 왜 그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느냐 하면, 5월 졸업식이 너무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해 5월은 매일매일 화창하고 찬란했다.



그 학교는 내가 꼭 가고 싶어 한 대학이었다. 그 학교에 가고 싶어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목적에 부합하는 이런 단순한 행동과 담담한 서술이 좋다.



나는 국문학에 일생을 바치면 여한이 없을 것 같은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의 일생 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봄날이 짧듯이 아름다운 시절이란 단명하게 마련인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그해 5월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것은 그해 내 나이가 스무 살이었기 떄문이기도 하지만 그해 5월은 유난히 잔인했던 6월을 몰고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동기 동창생들이 모이면 우리가 5월에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을 우리만의 행운처럼 회상하는 것도, 다 같이 그때가 우리 청춘의 절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졸업사진 중에서 그해 6월에 지워진 이름이 그 후 오십여년 동안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수효보다 훨씬 더 많다. 우린 여학교인데도 그러하거늘 남학교는 더할 것이다. 남자 20세는 전쟁이 내리는 얼마나 싱싱한 먹이였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스무 살이란 나이는 나뿐 아니라 모든 젊음이 가장 찬란한, 그러나 어느 정도 구체적인 인생의 무늬가 머릿속에 완성되었을 나이다. 막 베틀에 올라앉아 나만의 무늬를 짜기 시작하려는데 어떤 날카롭고도 잔인한 칼이 내 인생의 피륙을 싹둑 잘라버렸다면 어떻게 그 사실을 승복할 수 있겠는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이야기.





그것들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원망도 하고 사랑도 하고 착하게 굴면 잘되고 못되게 굴면 벌받게 되어 있었다. 세상은 겉보기에 아름다울 뿐 아니라, 돌아가는 이치도 이렇듯 좋은 사람에게 더 친절하다는 믿음은 훗날 이 세상을 헤쳐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까짓 이야기가 무슨 소용인가, 공연한 시간 낭비지 하는 생각도 있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그건 절대 아니다. 좋은 이야기는 상상력을 길러주고, 옳은 것을 알아보게 하고, 사람과 사물에 대한 사랑의 능력을 키워주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한다. 


책 읽어주는 엄마 아빠, 조금 자라서는 좋은 동화책을 마음껏 즐겨 볼 수 있는 환경과 같은 뜻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등단 무렵



심사평 중에는 잘 썼지만 순전히 자기 경험을 녹여 매끈한 소설 한 편을 빚은 거기 때문에 일회적인 작가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도 있었다. 새겨들을 만한 뼈아픈 소리여서 그 후 원고 청탁이 있을 때마다 그게 비록 몇 장 안 되는 잡문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다.

처녀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는 작가는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거의 모든 작가들이 컴퓨터로 작업을 하면서 글의 길이는 늘어나고 밀도는 떨어진다고 우려하는 소리도 있지만, 받아쓰기라면 모를까 머리와 가슴을 쥐어짜야 하는 작업이 손끝 재간에 그다지 크게 영향받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

나의 문학




제가 마흔 나이에 소설을 처음 쓸 적에도 당선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식구들 앞에 자존심 문제도 있으니까 식구들 몰래 밤에 많이 썼습니다. 졸리기도 하고 이 나이에 이게 무슨 짓인가 회의도 많이 들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최고의 교육을 시키면서 나에게 바란 것은 시집가서 편안히 사는 것 이상의 것이었을 것이다, 소설가가 되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내가 당선이 되어 내 이름이 신문에도 나온다면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이 많이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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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박완서.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