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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폭우

김곰곰 2012. 10. 5. 21:25

역시 여름은 눈 앞을 가릴 정도로 비가 오니까 좋다. 여름에 오는 비는 아무리 와도 사람을 청승 맞게 하지 않아서 좋다. 여름에만 비가 오면 좋겠다. 비는 여름에만 오면 좋겠다. 가진 게 없어 서러운 겨울은 내내 맑았으면 좋겠다. 지구라는 구슬이 깨어질만큼 맑은 채로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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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소용없어요!
엄마가 분노했다
내가 엄마의 팔에 매달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피아노는 팔려나갔어야 했을 것이다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을 팔아버리고 나면
자유의 몸으로 도망이라도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우린 더 좋은 집으로 이사했다
빚더미 위에 새들이 하얀 웃음을 갈겼지만
우린 더 좋은
집에 올라가 있었다
가끔씩 미친 남자들이 칼을 들고 한밤중 문밖에 서 있었다
그런 날이면
베란다 너머로 교복 입은 아이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모습이 보일 때까지
엄마도 나도 미동이 없었다
연핑크 빛 방문 안에서 나는 음악을 들었다
약물중독으로 죽은 음악인들의 삶이 늘 그리웠다
그날 나는 조금 늦되게 방에서 나왔다
폭풍우가 몰아쳐서 유리창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그런 건 소용없어요!
엄마가 외쳤다
유리창은 이미 어긋나 있었다
경비 아저씨가 올라와 십일 층에 매달린 유리를 온몸으로 잡고 있었고
나는 학교에 갈 수 있을지 조금 망설이며
교복을 입고 있던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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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김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