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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일기

신발

김곰곰 2013. 2. 26. 21:47
특별한 의도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생활의 말이 부드럽게 나를 끌어안아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가씨, 이 신발은 안이 가죽으로 되어있어 한 번 고쳐주면 몇 년은 더 신을거요. 좋은 신발이예요."
그 말이, 그 신발을 볼 때 마다 생각난다. 신을 때는 고쳐서 밑굽도 닿지 않고 미끄럽지 않게되서 편하구나 싶은 생각만 드는데 집에와서 신을 벗고 내 다리가 없어 흐느적 누운 신발을 볼 때면 그 아저씨 말이 생각난다. 아저씨에게는 신발을 고치는 것이 일이고 수입원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좋은 마음으로 고치고 계시는 거다. 대충 고쳐주고 돈 벌어야지, 가 아니라 이 구두 오래오래 신으라고, 버려지지 말라고 고쳐주시는거다.
나는 신발이든 옷이든 편하거나 좋거나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으면 못쓰게 되버릴 때까지 신고 입는다. 그런걸 잘 버리지도 못하는데 애착이 많이 남아서다. 그런데 낡은 옷을 고쳐입거나 새것처럼 만드는데에 돈을 쓰진 않는다. 그래서 못쓰게 되버린 신발이나 옷이 짐짝처럼 남아있다. 버려야지 버려야지해도 아 이 옷을 입고 뭘 했었지, 그래 이 신발 정말 오래 신었네 같은 생각을 하다보면 다시 개켜서 옷장 구석으로, 서랍 안에 수건 밑으로, 이제는 짝이 다른 새 신발의 신발상자에 들어가버린다. 그런게 익숙해지다보니 낡아도 편안한 것, 내게 길이 든 것을 입고 신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얻은 옷도 있고 진짜 진짜 원해서 세일을 기다렸다 산 옷도 있다. 예뻐지고 싶다가도 서운해지고 어색해진다. 누추한 것 같은데도 편해서 부끄럽게 조우한다. 한번도 뭘 고쳐서 그 기간을 연장해본 적이 없었다. 이 신발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너를 신고 걷는 동안 나는 어떤 겨울을, 몇해나 더 지나게 될까. 그리고 내가 다른 신발을 신는 동안 너는 그 추억을 가지고 몇 년이나 내 신발장에 있게될까. 그 안에서 더 오래된 신발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게될까, 하기는 하는걸까. 너희도 한 사람인 나의 서로 다른 시기를 빛남과 음울함을, 혼자 걷던 언덕을 즐거이 꾸겨 신었던 함께했던 날을 공유하려나. 질투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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