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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탈(脫)샐러리맨'의 변

김곰곰 2010. 2. 16. 14:03

'탈(脫)샐러리맨'의 변

 십여 년 전 텔렉스 오퍼레이터로 모 회사의 통시과에 근무하던 시절, 나는 어떤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흠칫 놀란 일이 있다.
"그럼, 자네한테 무슨 다른 재주라도 있단 말이야?"
 그야말로 선배의 말씀 그대로였다. 당시 나는 간신히 텔렉스로 송수신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밖에 없었고, 세상이 인정해줄 만한 특기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별 의미도 없이, 하품을 하듯 "이런 일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중얼거린 내게 선배가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고, 그 다음부터는 그런 류의 불평을 두 번 다시 늘어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말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내 인생은 별볼일 없이 끝나고 말 것이란 초조함을 느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결정적인 말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국 아무 수도 쓰지 않는 타입으로, 즉 가슴속으로만 은밀하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마지못해 일을 계속하는, 그다지 사내답지 못한 인간으로 일생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에게 내가 "소설을 좀 써보려 한다"고 털어놓자 그 친구는 나를 비웃음 섞인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무슨 일을 할 사람은 입을 다물고 하는 법이라구."
 그렇다고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로 당장 샐러리맨을 그만두고 소설가로 살아가겠다, 는 식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다. 펜 한 자루로 먹고살아갈 수 있게 되기까지 그 일을 계속했다. 재미있는 것은 인생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그 쪽을 향하여 구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오퍼레이터란 일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독자적인 창작 방법에 대해서는 무척 열심히 고민했는데, 세상의 문학가들이 집착하는 문학적 생활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고 문학에 절어 있지 않았던 점이 오히려 플러스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탈샐러리맨'을 시도한 사람들이 장사에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까닭은 '외관'을 지나치게 따져서가 아닐까. 어떤 장사ㅡ개중에는 장사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ㅡ든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관'따위는 따지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있는 힘을 다해 일을 해도 매사가 순조롭지 못한 잔혹한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샐러리맨의 세계는 비인간적이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사소한 문제가 두세 가지 한꺼번에 겹쳤을 때, 꿈같은 이야기에 불쑥 뛰어들어 미련없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은 한 일이년 사이에 폭삭 망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좀더 세련된 생활을 하고 싶다거나 편해지고 싶다는 따위의 도피적인 경향이 짙은 동기로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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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