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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혹시 이런 질문을 하고 다니는 것도 법으로 금지된 건 아니겠죠?"

 "어떤 상황 말입니까?"

 "독일에서 벌어지는 일들, 히틀러와 유대인 문제 말입니다."

 "내 힘으론 어떨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을 안 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말을 칭찬으로 들으셨군요.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한 거죠?"

 "칭찬은 아니지만, 욕도 아니잖습니까? 사람들은 국적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난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온갖 나치당원들의 이름을 줄줄 말했다. 모두 헬가와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헬가와 내가 나치에 열광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증오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들은 우리의 연극을 사랑하는 열렬한 관객이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중요 인사였다.

 그들도 그냥 사람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비로소 그들이 참으로 벌레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그들이 정말로 그런 짓을 했을까 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나는 그들과 인간적으로 아주 친했고, 한창 때에 그들의 신뢰와 갈채를 얻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정말 열심히.

 제기랄.

 너무 열심히.







 "내가 집에가서 이 문제를 숙고해볼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집에 가면 나는 아름다운 아내와 훌륭한 식사를 하고, 음악을 듣고, 사랑을 나누고, 개처럼 잠을 잘 겁니다. 난 군인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닙니다. 난 예술가예요. 전쟁이 일어나도 전쟁에 도움이 될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평화로운 일에만 전념할 겁니다."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캠벨 씨, 당신에게 세상의 행운을 모두 빌어주고 싶군요. 하지만 이 전쟁은 어느 누구도 평화로운 일에 빠져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요.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나치의 만행이 심해질수록 당신은 개처럼 마음 편히 잘 수가 없을 거요."






 "그래요? 거기에서 뭘 알아낸 겁니까?"

 그는 미소를 지었다. "순수한 마음과 영웅을 동경한다는 것, 선을 사랑하고 악을 싫어한다는 것, 로맨스를 믿는다는 것."

 그러나 내가 첩보원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아마추어 배우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설명한 부류의 첩보원이 된다면 나는 아주 굉장한 연기를 펼칠 기회를 잡는 셈이었다. 나치당원의 외면과 내면을 탁월하게 해석하여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때부터 나는 모든 사람을 감쪽같이 속였다. 



나는 게임이 즐거웠고, 직관적으로 흥미로운 묘수들을 떠올려 새로 사귄 친구가 나를 이기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했다. 

 그후로 크래프트와 나는 일 년 삼백육십오 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적어도 세 판씩은 체스를 두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 각자가 허전하다고 느꼈던 애달픈 가족애 같은 것을 쌓아나갔다. 우리는 다시 음식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고, 식료품점에서 새로운 재료를 발견하면 사가지고 와서 필요한 만큼 나누곤 했다. 딸기철이 돌아왔을 때 크래프트와 나는 마치 예수가 돌아오기라고 한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







내가 진짜로 누구이고 내 말의 진의가 무엇이었건 간에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무조건 적인 사랑이었다. 헬가는 나에게 그 사랑을 준 천사였다.

아낌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젊은이는 지구상에 없다. 아아, 젊은이들이 그들의 배역에 따라 정치적 비극을 연기하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들이 찾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짜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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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나이트, 커트 보네거트.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