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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 들어갈 때마다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다보면, 사실은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왜 인간은 고뇌하는 것일까? 어딘가 쓸 데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유용하게 써먹는 법을 배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나중에 써먹을 데가 있을 정도의 고뇌라는 게 있을까. 특히 고상한 고뇌라는 놈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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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을 뿌려 엄마를 쫓아냈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저런 엄마를 두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런 때다. 아무리 매사에 대범한 나라고 해도, 가끔은 길을 잃은 듯 헤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말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농담 같은 안내문이 나를 위축시키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오게 했던 것이다. 고민할 정도는 아니야. 어떤 곤란에 부닥칠 때마다 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넘어왔다. 혹시, 정말로 나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갖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만 해도 목욕탕 안의 물은 한층 따뜻하고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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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날, 우리 세 가족은 고타츠에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오, 나에게도 평범한 행복이 찾아왔군, 하고 감격하는 것은 바로 이런 때다. 작은 행복. 어쩐지 가정에 충실한 자식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엄마가 따뜻한 차를 내오고 나와 할아버지는 막 삶아낸 감자에 버터를 듬뿍 발라 먹었다.
 "아버지, 그렇게 버터를 많이 바르면 몸에안 좋아. 무슨 노인네가 그렇게 기름진 맛만 좋아한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요즘 내가 밥맛이 없어서 말이야. 버터 정도는 마음대로 먹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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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닐까? 술주정하는 남편하고 같이 살아보지 않으면 그 여자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거고, 젊은 남자에게 미쳐보지 않으면 아기 엄마 마음을 알 수 없겠지. 단지 이 사람들은 어느 순간 죽여버리고 싶다고 온몸으로 느꼈을 거야. 거기에 이성이 개입될 여지는 없었겠지. 그것은 남의 일이야. 물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지나가는 사람을 죽이는 건 분명 안 될 일이지만, 가족처럼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 사이의 일에 대해선 함부로 말 할 수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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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둬, 울지 마.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으면서."
다지마는 눈을 쓱쓱 문질렀다.
"무엇 때문인지 슬퍼. 그 자식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는데. 미움을 받지도 않았고, 등교거부를 한 적도 없었어. 눈에 띄지 않는 애였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죽는 바람에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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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다. 나는 봄바람을 좋아한다. 달콤한 먼지 냄새 같은 것이 코를 스치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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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아냐. 주위에 좋은 사람은 많이 있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답답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데도 도무지 기분이 나지 않아. 그것도 누구 탓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 그걸 잘 알고 있으니까 발산시킬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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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릴 수도 있다는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다리는 여자 따위는 싫다. 물론 야마노 마이코가 나를 기다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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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사람들의 눈을 끌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면이 하나도 없어. 나는 여자가 사용하는 향수를 좋아해. 향수보다는 비누 냄새를 좋아하는 남자가 많으니까 그런 비누 냄새를 피워보려고 애쓰는 여자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강렬한 향수를 마음껏 뿌리고 다니는 여자가 좋아. 예를 들어 하는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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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그런 때가 되었구나. 그래, 난 공부는 못해도 여자한테는 인기가 있어, 하고 뽐낼 형편도 못 되지. 고뇌의 청춘이로고. 멋져. 아주 좋아. 열심히 고뇌해서 이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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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자식! 유행가 가사 같은 말을 하다니. 나는 뽕짝이 싫어. 가난이라는 시련은 달게 받을 수 있지만, 가난을 티내는 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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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못해, 야마다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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