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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선생님,

김곰곰 2012. 1. 24. 19:43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과거를 밑거름으로 탄생한 사상이니까요. 저는 과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사상을 별개의 것들로 나눈다면 저에게는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건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인형을 선물받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전 그것에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셨다. 담배를 들고 계신 손이 살짝 떨렸다.
 "참 당돌하구먼."
 "솔직한 제 심정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중략)"

 

 

 

 

 

 

 

"솔직히 말하면 난 정신적인 결벽주의자지. 그래서 늘 고민하는 거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꽤나 어리석은 성격이야" 라고 하며 웃으셨다.

 

 

 

 

 

 

 

 

 


사실 그건 다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하지만 편지를 다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쓸 때의 기분과는 좀 달랐다. (중략)
인간은 거스를 수 없이 타고난 가변적인 존재임을 절감했다.

 

 

 

 

 

 

 


지난번에 단단히 동여매두었던 내 짐보따리는 어느 틈엔가 풀어헤쳐져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필요할 때마다 그 안에서 이것저것을 꺼냈다. 나는 도쿄를 떠나면서 세웠던 계획들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 가운데 내가 한 일은 계획의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나는 계획을 완수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허탈함을 이전에도 몇 번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여름만큼 생각해둔 것을 실행하지 못한 적은 거의 없다. 이런 게 사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억누를 수 없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했다. 이런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론 아버지의 병환을 걱정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일들도 상상했다. 또 언제나 그랬듯이 선생님도 마음속에 그렸다.
(중략)
 가련한 나는 부모님께 효도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나는 선생님께 단 한 줄도 써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예민해서, 자극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내 자신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네가 알다시피 소극적인 나날을 보냈던거야. 그러니 한번 약속한 이상 그걸 지키지 않는 건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일인 거지. 나는 자네에게 이런 죄책감이 드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놓았던 펜을 다시 쥘 수밖에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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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츠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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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선생님이 그인 것도 같았고 나인 부분도 아주 조금 있었다.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힘, 자신에게 집중하는, 마음으로는 느껴지지만 보이지 않는 선과 같은 것. 그 바깥에서 기분이 좋은 날 그 사람을 기다렸던 들뜬 마음과 차분함 그런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