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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위기에서 직업적인 표시가 심하게 나는 사람을 보면 어딘가 가짜 같은 느낌이 든다. 소설가다운 풍채를 한 소설가가 있다고 해보자.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세상 고민은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듯한, 심각 그 자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글쟁이는 엉터리임에 틀림없다.
(중략)
 내가 존경하는 한 유명 배우는 남의 눈에 그다지 띄지 않는 수수한 차림을 즐겨 해서, 시골 학교의 교장 선생님처럼 소박함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이야기를 해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멋이 흠씬 묻어난다. 풍류 아닌 곳에 진정한 풍류가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이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풍류'라는 단어를 때로는 '인생'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 아닌 곳에 인생이 있다."
 인생 운운하면 뭔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극적인 것을 연상하게 되는데, 그러나 어디 극적인 것만이 인생이겠는가. 표면적으로는 극적인 것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평범하고 평탄한 일상적인 노고의 연속, 그것이 우리들의 생활이 아닌가.
 그리고 그곳에서 바로 "인생 아닌 곳에 인생이 있다."라는 말이 성립되며, 인생의 깊은 의미와 신비가 숨겨져 있다. 그 깊은 의미와 신비를 탐구해서 글을 쓰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무척 좋아하는데, 최근의 드라마를 보면 점점 더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극'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러나 굳이 그런 것을 가미하지 않아도 인간을 그려낼 수 있다. 그렇게 극적이지 않아도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답다'라든가 '~에 걸맞는'과 같은 말에는 아무래도 가짜 냄새가 난다. 진짜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담담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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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사는 법 죽는 법, 엔도 슈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