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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첫문장

김곰곰 2012. 5. 31. 21:48

「하와이라……」

 아버지가 내 앞에서 처음으로 '하와이'란 말을꺼낸 것은 내가 열네 살 때 설날이었다.

 

GO, 카네시로카즈키. 2008년 1학기라고 생각된다. 현대소설의 연구? 이해? 이런 수업을 들으면서 한 학기 내내 이 소설 하나만을 읽었다. 정말로 질릴 정도로 읽었는데도 실수 했고 선생님은 쌍욕이 나올 정도로 과제를 내주고 질문했다. 그렇게까지 치달았지만 소설, 이라는 것을 내버릴 수 없었다. 질리기는 커녕 질릴 정도로 읽었는데 역시 좋아한다, 고 깨달았다. (내 인생을 둘러싼 세 사람의 남자처럼) 고생을 하더라도 많이 틀리고 실수하더라도 이거라면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첫 문장을 떠 올릴 수 있었다. 첫 문장을 떠올리니까 그동안 고생하며 읽었던 구석구석의 내용이 스쳐 지나갔다.

 

 

 

 서른일곱 살의 나는, 그때 보잉 747기의 좌석에 앉아 있었다.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센세이션' 이라는 단어를 온 몸으로 체험한 책이다. 2002년 9월 5일, 진이와 정림이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은 책. 그 전에 읽었는데 너무나 놀라워서 어떻게해서라도 가지고 싶어서 부탁해서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에 예슬이와 소설의 첫문장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때 내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소설은 바로 노르웨이의 숲.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단어의 뜻 조차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읽었다. (주로 성적인 단어여서 글의 흐름을 해한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전에도 중학교 때부터 독일과 일본의 소설은 읽어왔지만 이 책만큼은 뭔가 달랐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확실히 나를 이 쪽의 인생으로 인도한 책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연구하려는, 정신적으로 지지하고 나아가려는 삶의 모토와는 조금 다른 작가의 성향이지만 다름을 인정한 위에 언제라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랄까. 문학 선생님은 나와 선주를 보며, '너희는 지금 이 책을 읽니? 이해가 가?" 하고 물었다. 그 때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낀 명확한 것 한 가지는, 삶과 죽음이 이어져있다는 것.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지금 읽고 있는 책인데 첫 문장을 보는 순간, 사야지 하고 마음 먹게했다. 적은 돈을 벌고 있지만 나는 내 인생은 그럭저럭 굴러가게 할 만큼의 돈을 벌고 있고 모아봤자 먼지처럼 연약한 일에 날라가버리는 저금을 깨고 책을 더 많이 읽기로 했다.

 

 

 

 8월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 되었다.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요 앞전에 읽고 역시나(사스가!) 하고 머리에 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던 책. 박쥐를 봤을 때와 비슷한 감각. 너무 잘 만들어진 것이라 보는 내 쪽까지 신이나서 주체를 할 수 없을 정도. 작년 문학사 수업 때 이 작가에 대해서 무척 짧게 지나갔지만 꼭 읽어보고 싶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켄자부로가 존경하는 작가이고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아마 내가 아닌 그(아베 코보를 지칭)가 받았을 거라고 말했을 정도라니까, 그것만으로도 꼭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찾아서 읽지는 않고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만나서 나를 엄청난 감동에 휩싸이게 하려고 그랬던거겠지. 모래라는 세계를, 환상적으로, 이런 설명은 틀린 게 아니였을까? 나는 문학사 수업 때 듣고는 무슨 SF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기억은 가공되는 것이지만. 현실적인 구성과 탄탄한 스토리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철저히 그리고 있다. 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도 이러한 맥락이 조금은 흐르는걸까? 하고 생각해봤다. 사람이 어떤 장소에 유폐되면 처음에는 의지를 다잡고 탈출하려고 하고 자신을 이 상황에 빠트린 대상을 증오하지만 점차 연민과 포기의 단계를 거쳐 순종하게 된다는 메타포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아득한 미로의 습곡을 빠져나와 드디어 당신이 찾아왔다.

 

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미스터 하네다는 미스터 오모치의 상사였고, 미스터 오모치는 미스터 사이토의, 미스터 사이토는 미스 모리의, 미스 모리는 나의 상사였다. 그런데 나는, 나는 누구의 상사도 아니었다.

 

- 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It's a Barnum and Baily world,

Just as phony as it can be,

But it wouldn't be make-believe

If you believe in me.

 

 택시 라디오에서는 FM방송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Q84, 무라카미 하루키.

 

 

 

 

 누군가 총총히 문 앞을 달려가는 발소리가 났을 때, 다이스케의 머릿속에는 도마처럼 생긴 커다란 나막신이 떠올랐다.

 

그 후, 나츠메 소세키.

 

 

 

 유화물감처럼 뻑뻑한 코발트블루의 짙은 빛을 하늘 복판까지 밀어붙이면서 동풍이 불어왔다.

 

-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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