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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소설의 명확성

김곰곰 2012. 5. 31. 21:50

그렇다고 시간의 흐름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오두막으로 돌아갈 결심만큼은 도무지 서지 않았다. 여자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떨어져서 생각하니 한층 더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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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본 여자의 얼굴이 경계의 빛으로 굳어 있었다. 평생 그런 표정으로 지내왔으리라 여겨질 만큼 애원의 빛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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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보다시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너무 단순한 듯이 여겨지지만, 목적에 부합된다면 단순함이 최고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예를 봐서도, 실로 명쾌한 해답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단순한 법이다. 다소의 성가심을 꺼리지만 않는다면…… 싸울 각오만 되어 있다면……  아직은 모든 것이 끝장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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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좋아…… 인간은 각자 타인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신조라는 것을 갖고 있으니까…… 모래를 쓸어내리든 뭘하든, 멋대로 해보시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로 참을 수 없어. 이제 신물이 난다고! 아무튼 나는 여기를 떠나겠어……  허술히 보면 안 되지……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도망치는 것쯤 문제없으니까 말이야……  마침 담배도 떨어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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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닦을 틈이 없다면 눈을 감고서라도 부삽질을 할 일이다. 절대로 이 손을 쉬어서는 안 된다. 이 적확한 속도를 보면, 아무리 바보들이라도 자신의 경박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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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행동을 동경하는 나머지 자유로운 행동을 증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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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허를 찔리고 말았다. 참으로 묘한 논리도 다 있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그도 받아칠 자신이 없다.

 그렇다……. 십몇 년 전, 저 폐허의 시절에는 모두들 한결같이 걷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찾아 광분하였다. 그렇다고 지금, 걷지 않아도 되는 자유에 식상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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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하는 한편 고소한 기분도 들었다. 미덕에 관한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술궂어지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약을 올리는 재미에 묵직하게 무게가 실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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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는 저 멀리로 사라지고 말았다. 새삼스럽게 그런 가능성에 매달려 봐야 기대라는 자가 중독에 걸려 고통스러울 뿐이다. 지금은 누군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문을 비틀어 열고 힘으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어떤 주저도 구실이 될 수 없다.

 아플 정도로 모래에 푹 찔러넣은 손톱에 전신의 무게를 싣고, 열을 세면 뛰쳐나간다……. 그런데 열셋을 세고서도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아, 넷을 더 세고서 간신히 실행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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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멋진 말을 생각해 냈군…….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내게 상처를 주었는지 그녀는 절대로 모를 것이다……. 우선 성병은 멜로드라마하고는 정반대다……. 멜로드라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절망적인 병이다……. 콜럼버스가 보잘것없는 배를 타고 보잘것없는 항구에 살며시 반입한 것을, 모두들 열심히 나누어 온 세상에 퍼뜨렸다……. 인류가 평등하다고 할 수 있는 경우는 죽음과 성병에 한해서인지도 모른다……. 성병은 인류가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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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표란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맥락 없는 생활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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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숙달된 기미가 보이면 그나마 안심일 텐데 오차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피로와 초조의 간격만 오히려 좁아졌다. 아무래도 너무 간단히 생각한 것 같다. 누구의 속임수에 걸려든 것도 아닌데 부아가 치밀고 울음이 터져나올 듯한 기분이었다.

 하기는 가능성은 반복에 정비례한다는 확률의 법칙은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아무 기대도 없이 거의 자포자기한 기분으로 던진 열몇 번째 로프가 보란 듯이 가마니에 꽂힌 것이다. 입안이 푸르르 떨렸다. 침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하지만 좋아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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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활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도 물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부엌이 있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궁이가 있고, 교과서를 쌓아놓는 사과 상자가 있고, 부엌이 있고, 화로가 있고, 등잔이 있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궁이가 있고, 찢어진 장지문이 있고, 검댕이가 낀 천장이 있고, 부엌이 있고, 움직이는 시계와 움직이지 않는 시계가 있고, 소리 나는 라디오와 망가진 라디오가 있고, 부엌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궁이…… 그리고, 그런 것들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백 엔짜리 동전과, 가축과, 아이들과, 성욕과, 차용증과, 간통과, 향로와, 기념사진 등……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 반복……. 그것이 심장의 고동처럼 생존에 불가결한 반복이라 할지라도, 심장의 고동만이 생존의 모든 것이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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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동물의 집은 어찌하여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일까! …… 동물한테서 꽃향기가 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전혀 없을 텐데……. 아니, 이건 내 발 냄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친밀감이 솟구치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누구였던가, 자기 귀지만큼 맛있는 것도 없다, 본고장의 치즈 이상이라고 말 한 인간이 있었던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썩은 이의 냄새 같은 것에는 아무리 맡아도 싫증나지 않는 고혹적인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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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이 직감에 의지하여 수정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늘 어이가 없을 정도로 오차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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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할 것인가……. 여기만 넘으면 부락 밖이다…….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될지 말지는 오로지 이 순간에 달려 있다……. 뭘 우물쩍거리고 있는 것이냐! ……순간이란 당장에 포착하지 않으면 늦는 법이다……. 다음 순간에 편승하여 뒤를 쫓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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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줘!」

 늘 정해져 있는 말! ……아무렴 어떠랴……. 다 죽어가는 판에 개성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나. 판으로 찍어낸 싸구려 과자 신세라도 좋으니, 아무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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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생각해 보니, 언제 어떤 식으로 탈출의 기회가 찾아올지 전혀 앞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아무런 기약 없이 그저 기다림에 길들어, 드디어 겨울잠의 계절이 끝났는데도 눈이 부셔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구걸도 사흘을 계속하면 그만두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내부로부터의 부식은 의외로 빨리 진행되는 것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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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상관이에요. 그런, 남의 일이야 어떻게 되든!」

 남자는 주춤하였다. 마치 얼굴을 바꿔 낀 듯한 변모였다. 여자를 통해 드러난 부락의 얼굴인 듯하였다. 지금까지 부락은 일방적인 형 집행자였다. 아니면 의지가 없는 육식 식물이거나, 탐욕스런 말미잘이었다. 그는 어쩌다 거기에 걸려든 가엾은 희생자에 지나지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 부락 쪽에서 보면, 오히려 버림받은 것은 자기들이란 얘기가 된다. (중략) 어색한 낭패감을 보이고 만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물러서면 자신의 정당서을 스스로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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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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