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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조금 마셔도 괜찮겠습니까.
눈이 마주치자 유곤 씨가 말했다. 마셔도 괜찮다는 대답을 듣고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기계들의 모서리를 건드리지 않조록 조심스럽게 몸을 비껴가며 안쪽으로 들어왔다. 냉온수기에 얹힌 선반을 들여다보며 한참 망설이다가 종이컵을 집어서 찬물을 받았다. 그런 다음엔 거기에 뜨거운 물을 섞으려는 듯했는데,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밸브엔 안전 버튼이 달려 있었기 때문에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 했다. 유곤 씨는 계산기를 쥔 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듯했다. 한 손엔 계산기를 쥐고 한 손엔 종이컵을 쥔 채로 허둥대다가 계산기를 옆구리에 끼고 소심하게 손가락을 뻗어서 안전 버튼을 누르고 뜨거운 물을 받아 내서 마침내 천천히 마시는 모습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어 바라보았다.
+ 정말로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렇게나 죽겠다고 말하지는 마요.
네.
그러면 계속 걷죠,
-
백의 그림자, 황정은. 민음사.
+ 최근에 본 가장 슬픈 묘사다. 산다는 게 너무 아무렇지가 않다. 이렇게 아무렇지가 않을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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