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둘 /시드니

가끔 생각해본다

김곰곰 2017. 1. 23. 23:56
가만히 누워서 잠이 안오는 밤엔 가끔 생각해본다. 아파트가 몇 개 없는 작은 단지의 높은 층 그 집이나 버스 정류장이 가깝고 옛날 아파트 같았던 그 집이나 조금 걷긴 해야하지만 놀이터를 지나 나무 덩쿨을 지나 가던 집, 버스를 한참 타고 또 동네를 한참 돌아서 도착했던 아직 정돈되지 않은 지역의 높은 집, 세 개의 복도가 있는 집. 거실이 넓고 한쪽 베란다 가득 나무가 넘실거리던 집, 무척 높은데서 학고 운동장하고 저 멀리 새로운 집들이 지어지는 모습이 보이던 집, 아주 잘 꾸며져 있는데 무척이나 비좁던 집들. 처음 보러 갔던 그 집은 간난아기의 짐이 많았지만 환했고 바람이 시원하게 잘 불었다. 아주 가까이에 탄천이 있었는데 도시가스가 안들어와서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더운 계절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해가 긴 저녁이 계속 되는 날들이었다. 그 집은 엄마랑 둘이서만 보러 갔었는데 엄마는 이 집을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았다. 같은 집인데도 낮은 층은 어두웠고 비어 있으니 구경이나 가자고 했던 칠층이었던가 구층이었던 그 집은 참 단정했다. 내게는 단정했지만 신랑에게는 조금 답답해보이는 집이었다. 나무 덩쿨을 지나가는 그 집은 아주 작은 창이었지만 창밖이 보이는 부엌이 있는 게 좋았다. 아주 오래 한 가족이 살았던 집으로 조금 파란 빛을 띄는 집이었지만 아이까지 낳고 오래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우리 형편에 맞는 집을 보려고 더 작은 집, 더 먼 집도 찾아갔다. 그리고는 집을 찾아보는 일을 그만두고 여기에 왔다. 그때 부담을 가지지 않는 방식으로, 가장 가벼운 선택을 했다. 손에 잡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유일한 것이라 나는 되도록이면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가지고 싶었다. 어디로 멀리 계속 떠다니고 싶지 않았다. 한 자리에 우물처럼 오목하게 있고 싶었다. 이제는 오래 된 신도시에서 살뜰하고 즐겁게 신혼을 보내고 거기서 아이를 낳고 살고 싶었다. 내 인생이 집값을 갚느라 조금 빠듯해져도 남들도 하는 만큼의 고생을 하면서 남들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사는 데를 꽤 여러 번 옮겨 다녔다. 집을, 짐을 옮긴다는 걸 괴롭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되려 새로운 집, 새로운 동네에서 지낼 수 있는게 조금 설레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누워서 아주 조용한 상태로 매미 소리 신랑 숨소리 저 멀리 지나가는 차 소리를 듣고 누워서 그 동네 가까이서 아기를 낳고 사는 친구, 엄마 가까이에 이사를 가는 시누 같은 동년배 여자들을 생각해봤다. 그 삶을 살면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을 거 같다. 단순하지만 충만한 삶, 앞으로 몇 해는 더 즐겁자고 생각할 수 있는 가벼운 삶. 저 때 생각했던 답말고 더 많은 선택지를 스스로 떠올릴 수 있게 된 나. 월세라도 괜찮고 집을 지을 수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길은 하나가 아니고 어떤 길을 가더라도 기꺼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져야지.


' > 시드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단  (0) 2017.03.04
잘못된 선택은 없다  (0) 2017.03.04
2015년 10월부터  (0) 2017.01.21
세상 귀찮은 일들  (0) 2017.01.08
왠일로 산에 갔다  (0) 2017.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