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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애를 키운다는 건,

김곰곰 2012. 11. 26. 22:06

나는 레아였던 나의 인생도 참 많이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레아라는 이름을 갖게 된 딸의 뒤에서 사는 엄마로 사는 삶에 조금 거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 삶은 얼마나 따뜻하고 평화로울까. 너를 부르는 나의 이름이 평생 동안 얼마나 나에게 많은 기쁨과 감동을 줄지. 


벌써부터 상상하게 되는,

매혹적인 너를 사랑하며.



같이 태어난 신생아실 동기들 중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나는 너를 주성치보다 미스터빈보다 더 많이 웃겨 줄 거야.




엄마가 도울게. 힘껏!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너는 그저 아름답게만 자라줘.




남편도 나도 사진이 좋아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곧장 셔터를 누르곤 했지만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일을 해야 하는 그날은 시댁 어른들과 함꼐인 자리에서 마음 편히 카메라를 꺼내들 수 없었다. 호들갑을 떨 수도, 실컷 감상에 빠져 눈만 바라볼 수도 없어 외롭고 슬펐다. 남편이 "어, 눈 온다! 레아 씨, 눈 와!" 하는데도 나는 그저 착한 며느리의 표정으로 "아, 정말 그러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레아야, 이건 눈이야. 너와 함께 눈을 밟다니 정말 감격스럽다. 




이사 온 후, 열흘이 넘도록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그것에 대해 큰 불만도 없다.

나는 참 체질이구나 싶을 정도로 육아가 즐겁고 신이 나서

레아가 밤에 깨서 보채도 그래그래, 

혼자 목욕을 시켜야 할 때도 아~ 예쁘다,

안아달라고 칭얼거리면 빛의 속도로 안아주고,

옹알이를 시작할 땐 감격에 겨워 발을 동동 구르며 동영상을 찍었다.

이런 내 모습과 내 삶이 흐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신기할 정도로 나와 잘 맞고 편안해서 그저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의 나날들.





나는 정말 너에게 의지를 많이 하고 있나 봐. 고마워.



나는 짜증을 냈고 남편은 시계를 한 번 보더니 다녀올게, 하고는 씩 웃으며 출근을 했다. 구깃구깃한 셔츠를 받아 들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늘 하얗고 말쑥하고 깔끔한 내 남편을 내가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만들었구나. 정말이지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이틀째 생각에 잠겼다.

남편은 더 이상 나를 바라보며 너를 갖고 싶어 미치겠다는 표정은 짓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젠 사랑이 아닌 걸까. 우리는 이제 가족이니까, 사랑은 아닌걸까.

나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우리의 사랑은 변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거나 머물면서 따뜻한 온도로 흘러가는 중이라고. 날씨 좋은 휴일 오후, 몇 시간이나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는 남편에게 불평 대신 씻은 포도를 가져다주는 일은 내 사랑의 다른 얼굴이고, 육아에 지친 내가 셔츠를 다려놓지 못했을 때, 짜증보다는 나와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새벽 출근을 준비하는 그의 들려진 뒤꿈치가 사랑의 다른 발음이다. 우리는 애틋하게 서로의 손을 탐닉하는 대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아기를 안아 올리지만. 



하며 겹치지 않도록 신경써서 감탄사를 바꿔가며 나긋나긋하게 대꾸해준다.

별 것 아닌 일을 마음 편히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멋있는 척, 심각한 척, 슬퍼도 피곤해도 고민에 비해 비교적 명.랑.한.삶을 살고 있다는 숨길 수 없는 커다란 증거가 아닐까. 




그래, 나는 이기적이게도 행복한 건가 봐. 타인의 상처와는 상관없이. 




4시에 선잠에서 깬 남편이 하나 둘 짐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만큼 긴장이 되고 진정이 되지 않아 안절부절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아빠! 아빠!" 하며 신나게 뛰어다니는 레아에게 나도 모르게 "이 바보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럭 소리를 지르고는 결국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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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았을 때 첫 인상은 '블로거가 책을 냈구나'. 책이 참 많이 나오는 세상이다. 책에는 의미나 필요가 있으면 좋겠다. 뭐 세상 어떤 일에 찾으려면 의미 하나가 없겠냐만은 개인 소장용으로 내는 거 말고, 매출 맞출려고 내는 책 말고 정말 있어야하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연예인이나 블로거 저자에는 심술이 있는데 판매는 되겠지만 기대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역시 그래도 뭔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당해낼 수 없다. 육아도 벅찬데 그 틈을 쪼개 글을 쓰고 아이와 남편과 내 미혼의 혼자 돌아오던 골목을 생각하다니. 읽는 내내 혼자 먹는 저녁밥이 주는 허망함을 잊게 해주었다. 나는 책은 제가 읽힐 타이밍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오늘 혼자 밥을 먹어야하는 내게 와서 읽힐 책이었다. 따뜻해, 우리 이 책은 사진찍고 글쓰는 엄마의 육아일기다. 인쇄되서 이 정도니까 실제 사진은 더 따뜻할 거 같다. 


다시 돌아와서, 육아는 어떤 일인지 나는 당연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적당한 때에 내게도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자아가 있는 엄마라 가끔씩 자주 우울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벅차게 내 앞에 생명을 소중히 하고 싶다. 기다리고 기대된다. 그 가능성과 그 신비에 매일 다른 상념이 없어질 것 같다. 










+ 하느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셨구나. 이 소식을 듣는 이마다 나한테 기쁘게 웃어주겠지. 

- 창세기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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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해, 우리. 레아.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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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사치례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부탁하면 할 수 있는 한 모두 해드립니다. 게다가 내가 즐거운 일이라면 더더욱. 대리님이 페이스북에 써주세요, 해서 정말로 오늘 읽고 냅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