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줄 모르고 펄펄 끓는 보일러를 잠재우고 어제 만들어논 카레로 점심을 먹고 나니 두시가 좀 안됐다. 조금 큰 식물들을 집에 들여야지 하다가 오늘이다 싶어서 함께 집하장에 가서 드라코, 떡갈나무, 극락조를 데리고 왔다. 화분을 사고 분갈이까지 마치고 앞자리를 양보하며 퇴근길 이전에 돌아왔다. 해가 진 이른 저녁에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졌는데 오늘인 것 같아 집에 있던 고무나무도 두 개의 화분으로 나눠 심어주고, 무럭무럭 자라는 스투키도 새끼를 모아서 작은 토분에, 어른들도 두개의 토분으로 분갈이를 해주었다. 스투키 둘, 고무나무 하나, 알로에 하나, 율마 하나였던 화분이 스투키 셋, 고무나무 둘, 새로 데려온 아이 셋까지 늘었다. 집안이 초록초록. 같이 잘 살아보자. 율마는 향도 좋고 색도 푸..
곡을 만들다 보면 가끔 도중에 막히는 일이 있다. 그런 떄는 대부분 입구를 잘못 찾은 것이다. 때로는 방향을 잘못 잡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머리를 전환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고집을 쉽게 버릴 수 없다. 시간을 허비하고,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자기 자신을 믿으며 만든 작품, 그런 작품을 어찌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 마음이 많이 담긴 작품일수록 도저히 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 뒤틀린 작품은 영원히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욱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변신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당신은 벽에 부딪혀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잊고 과감하게..
어제 못보면 앞으로 19년 뒤에나 볼 수 있다던 블러드 문. 퇴근 길에 올려다 봤을 땐 하얗고 크게 빛나는 달이었고 신랑과 같이 보았을 땐 반 정도 그 몸을 어둠에 숨겼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본 달은 훨씬 멀어져서 높이 떠 있었고 정말 붉은 색이었다. 잠들기 전에 창을 열고 엄마와 본 달은 다시 크고 가깝고 아주 밝았다. 달은 오랫동안 크고 천천히 있어야 할 곳에 가는 거지만 그게 사람의 시간으로는 19년이 되는구나, 19년은 커녕 하루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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