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습니다. 이까짓 얼룩." 그녀는 어두운 목소리를 낸다. "흙탕물이 조금 묻었다고 해서 새삼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요." 지당하신 말씀, 그대의 인생은 흙탕물이 튄 정도로는 달라지지 않아. - 나는 불쾌해졌다. 심각한 발언을 유머로 오해받다니, 바라던 바가 아니다. 대관절 어느 부분이 재미있다는 것인지 말한 장본인이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이다음에 대화에서 써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 나는 이런 경험이 아주 많은데 그때마다 불쾌해진다. - 그녀는 도통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자신의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모험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설령 호전되지는 못할지라도 변화라고는 없는 나날에 비하자면 그 어떤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 일..
하지만 그건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두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덴고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우선은 내 발로 찾아보자. 나 스스로 뭘 할 수 있을지, 조금 더 지혜를 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 그 일이 그립게 떠올랐다. 그런 관계가 언제까지고 이어지리라고는 물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토록 갑작스레 끝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 후카에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잠시 뭔가 생각하고 있었가. 그러고는 얼굴을 들고 사려 깊게 말했다. "그 사람, 바로 가까이에 있을지도." -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건 나도 충분히 짐작이 돼. 하지만 우리는 지금부터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는 게 좋아. 조금이라도 현실적이 되자구.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해." - ",(중략) 그건 내게는 소중한 풍경 중 하나야. 항상 내게 ..
적어도 3~5년 정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불로소득, 무통분만은 없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질풍로또'로 보내서는 안 됩니다. 젊을 때는 잠들고 싶을 때 잠들지 못하고,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늙어서 잠들고 싶을 때 잠들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으면 인생 역전의 기회가 오지만, 나태해지면 인생의 역전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 어리석어야 기회가 온다는 어렵게 들리는데요. ▶ 어리석다는 것은 묵직하게 자기를 만들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조류냐 동향을 따라가는 것은 나태한 것입니다. 자기계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사회가 만든 틀에 안주하는 것이 나태입니다. 사회에서 치열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오히려 나태..
내가 제일 예뻤을 때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時 이바라기 노리코(茨木則子 1926~2006), 유정 옮김 내가 제일 예뻤을 때 거리들은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난데없는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게 보이곤 했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누구도 정다운 선물을 바쳐주지는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엔 알지 못했고 서늘한 눈길만을 남기고 죄다 떠나버렸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딱딱했으며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우리나라는 전쟁에 졌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을까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활보했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라디오에선..
여자는 끌어당기고 뿌리칩니다. 아니면 또 여자는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나를 멸시하고 매정하게 대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는 꼭 부둥켜안고 여자는 죽은 둣이 깊게 잠이 듭니다. 여자는 잠을 자려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괜찮아요, 돈 같은거." 여자는 기뻐하며 일어났습니다. 심부름을 시키는 건 결코 여자에게 실망을 주는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자는 남자에게 부탁을 받으면 기뻐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이바라기노리코 바싹바싹 말라가는 마음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스스로가 물주는 것을 게을리하고서는 나날이 까다로워져 가는 것을 친구 탓으로 돌리지 마라 유연함을 잃은 것은 어느 쪽인가 초조함이 더해가는 것을 近親(근친) 탓으로 돌리지 마라 무얼하든 서툴기만 했던 것은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初心(초심) 사라져가는 것을 생활 탓으로 돌리지 마라 애초에 깨지기 쉬운 결심에 지나지 않았던가 잘못된 것 일체를 시대 탓으로 돌리지 마라 가까스로 빛을 발하는 尊嚴(존엄)의 포기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이 지켜라 바보같으니라고
맬서스는 피임을 죄악으로 간주하고 여성의 순결을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한 도덕적 억제 수단이라고 예찬했지만, 여성들은 순결보다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선택했으며,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출산을 통제했다. - 실로 기이한 일이다. 어째서 맬서스와 같은 천재가 세상과 인간에 대하여, 그토록 음울하고 비관적이며 기괴한 결론으로 달려간 것일까? 사람이 어떤 문제를 인지할 수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최소한 회피할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왜 맬서스는 왜 인정하지 않았을까? - , 여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사소한 불편을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공언에 대해서 진정으로 충실한 태도를 취했다고 할 수 없다. - 나는 어렸을 때 경주와 대구 동네 골목 이발소 액자에서..
그가 내 손목을 감싸다가 잡아당겼고, 나는 얼결에 그의 가슴에 안겼다. 그가 내 손을 자신의 바지 가운데 부분으로 가져다대며 말했다. 이것도 줄 수 있는데. 그가 너무 심각하게 말해서 내 입에서 풋,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 손으론 그가 건네준 노트를 들고 다른 손은 그의 바지 성기 부분에 올려놓은 채 나는 야릇한 슬픔에 잠겨 여기보다 더 먼 곳은 없을까?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 바닷가가 그때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면서도.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서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자기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착한 아가씨군." 그는 내 얼굴을 보며 말했습니다. "난 오랫동안 살면서 여러 사람을 보아왔어. 아가씨한테는 근사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아저씨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래뵈도 사람 보는 눈만큼은 있어. 아가씨의 부모님은 행복할 거야. 정말이야." "과분한 말씀이세요." 그리고 우리는 건배를 했습니다. -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건 그저 행복했으면 하는 것뿐이야. 네 부모님도 분명 그렇게 생각할 거야. 나도 부모니까 알아." "하지만 행복해지는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지. 부모도 해줄 수는 없는 일이지. 스스로 행복을 찾는 수밖에. 하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난 뭐든 아낌없이 해주고 싶어." 정말 멋진 분이구나, 심성이 맑기로 해라, 하고 나는 생각 했습니다. "젊은이는 행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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