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내가 왜 이와 같은 밤의 여로에 나서게 됐는지, 그때의 나는 이미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매우 신나고 배울게 많은 밤이었기 때문이겠지요. 뭔가를 배웠다는 것은 단지 나의 느낌일 뿐일까요? 그런 건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병아리 똥같이 작은 나는 어쨌든 아름답고 조화로운 인생을 목표로 앞을 향해 걸어갈 것입니다. - 지저분한 청춘의 한가운데에 선 채 꼼짝 못 하는 이 대학생이 실은 세상에서 가장 맑고 깨끗하다는 진실은 늘 외면당한다.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왜 일을 안하는 거지?" "왜 일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중략) 나는 원래 게으른 편이야. 아니, 자네와 가깝게 지내던 때부터 나는 게으름쟁이였어. 그때는 억지로라도 자신만만해했으니, 자네에게는 재능 있고 유망하게 보였을 거야. 그야 물론 지금이라도 일본 사회가 정신적, 도덕적, 구조적으로 대체로 건전하다면 나도 예전처럼 유망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그렇기만 하다면 할 일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리고 태만한 내 성격을 극복해 낼만한 자극도 또한 얼마든지 생길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 상태라면 안돼.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나는 오히려 나 자신만을 위해 살 수밖에. 그래서 자네 말대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것과 접촉하며 지내..
'나는 말주변이 없어' 하는 말은 '나는 무식한 사람이다. 둔한 사람이다' 하는 소리다. 화제의 빈곤은 지식의 빈곤, 경험의 빈곤, 감정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요, 말솜씨가 없다는 것은 그 원인이 불투명한 사고방식에 있다. (중략) 수도에서 물이 쏟아지듯이 말이 연달아 나오지마는, 그 내용이야말로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할 때 정말 정나미가 떨어진다. 케네디를 케네디로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말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같은 성인도 말을 잘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이 전파 계승된 것이다. 덕행에 있어 그들 만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나, 그들과 같이 말을 할 줄 몰라서 역사에 자취를 남기지 못한 것이다. 결국 위인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 이야기, 피천득.
그는 정말 괴로운 표정으로, 힘겹게 말했다. (중략) 사람의 약점은 저마다 다르다. - 그러고 보니 웃으면서 밤길을 걸어 돌아올 때, 이렇다 할 일이 없었는데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아주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나날도 이제는 끝이다. 헤어질 때가 되면 늘 좋은 일만 많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추억은 언제나 특유의 따스한 빛에 싸여 있다. 내가 저세상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이 육체도 저금통장도 아닌 그런 따스한 덩어리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세계가 그런 것들을 몇 백 가지나 껴안은 채 사라진다면 좋겠다. 이런저런 곳에 살면서 쌓인 갖가지 추억의 빛을 나만이 하나로 이을 수 있다. 오직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목걸이다. - "흠, 그렇구나. 너, 뭐 좋아하는 건 있어?" "오코노미야키 굽고 야키소바..
그 광경과, 그것을 보았을 때의 내 기분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한다. 그 후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이면에서 그 충격과 비슷한 것을 감지하게 되었다. 아무리 평화로운 풍경이라도 그 뒤에는 위태로움이 숨어 있으며, 우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리낌 없이 웃을 수 있음에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결부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중략) 어떤 사람도, 아무리 단단한 일상도, 커다란 힘이 가해지면 한순간에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 훗날 엄마를 만날 수 없어 괴로울 때면 늘, 그 우악스럽게 내리누르던 손바닥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상상 속에서 그 손은 항상 어둠 위에 하얗게 떠서 내 생명이 한 방울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중략) 그 손이 포악한 힘으로 나를 되밀었다는 것..
더부살이는 젊어서나 가능한 것이다. (중략) 머리가 맑으면서도 어떻게 될 것만 같은,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나는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았다. 숲처럼 변함없이 있어야할 것은 사라지고, 내 장난감이며 오래된 잡지는 조금도 변함없이 남아 있다. 이런 일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인생이 전혀 달라지고 말았다는 것에, 어린 나는 정말 놀랐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놀람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아직도, 다른 하나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연기하고 있다. 눈을 뜨면 엄마가 있는 인생으로 돌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 정도로 엄마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그 어떤 논리도 그 어떤 감상도 거부하는, 이유 없는 죽음이었다. - 하지만 계속 그렇게 있으면 엄..
"내가 처음 문학작품에 매혹된 이유는 무언가 해결되지 않고, 못나고 좀 뒤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패배자처럼 느껴지는 이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이었어요. 그걸 안아주고 채워주는 것. 그것이 처음부터 문학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엄마의 손길과 비슷하지 않나요? 뭔지 해결되지 않는 것에 가까이 가서 그걸 들여다봐주고, 왜 그렇게 됐을까 질문해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존재는 인간으로 하면 엄마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엄마는 서로 닮은 존재이지요." " (- 중략)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설 한 권 읽는다고 무엇이 그리 크게 달라지겠는가. 어떤 각성이 있었다고 해도 곧 바래지고 다시 눈앞의 일상으로 돌아와 비정하게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인생이지요. 다만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무엇인가를 결정..
무방비상태로 아버지의 몸과 그토록 오래 접촉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혜성은 좀 당황했다. 왜, 그 커다랗고 두툼한 손을 홱 뿌리치고 도망가고 싶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 혜성에게 열 살부터 스무 살까지의 시간은, 요란하게 윙윙거리는 자동차 엔진룸 속에서 고요히 닳아가는 타이밍벨트 같은 것이었다. - - 감사하다고 깍듯이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게 누구든, 어떤 종교의 신이든, 고맙다는 말만은 진심이었다. - 누나의 전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혜성의 경우는 좀더 복잡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설명하지 못할 짜증이 솟구쳐오르는 동시에, 그 짜증스러운 감정에 대하여 본능적인 죄책감이 밀려들곤 했다. - 그녀는 바닥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두 발목만으로는 몸과 정신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 덕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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