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시작이라는 설을 두번이나 보내면서도 겨울 방학 동안은 계획을 하고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하다가 3월 2일이 되면 결국 준비한 걸 시작하는 것도 아닌 채로 언제나 무언가 시작되버렸다. 사실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슬몃 땀이 나는 초여름 쯤이 되면 적응도 되고 무언가 돌아볼 수 있게 되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겨울이 될 때면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시작이라는 건 언제나 도대체, 왜,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일인 것 같다. 3월 2일이라는 걸 자각하면 봄이 온다는 기분만은 간직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어느덧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날이 되었다. 게다가 여기는 날씨도 정 반대인데, 그래도 꼬마들은 초등학생이 되어 오늘을 제외하고는 엄마 아빠 손을 잡지 않고..
시간이 참 빠르다.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호주에 온지도 한 달이라니. 오늘은 이유도 모르고 쉰 날. 이유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이틀 몰아서 쉬는 게 컨디션에 좋은데 팀 스케줄 따라 움직이는 거니까 별 수 없지. 마침 데이오프가 같아서 H씨네 커플과 함께 아점으로 얌차에 다녀왔다. 얌차는 차를 마시며 식사한다는 의미인데 정말로 천천히 차를 마시면서 조그만 차에 음식을 싣고 다니는 직원이 우리 앞에 오면 그 중에 맛있는 음식을 선택해서 먹으면 되는 방식이다. 광동식 음식으로 우리가 아는 국수나 밥, 탕수육 같은 음식보다는 딤섬이나 내장 등 새로운 요리를 많이 맛볼 수 있다. 네 명이가서 가지, 두부, 소의 위로 추정되는 내장, 닭발, 크리스피한 빵을 만두피 같은 걸로 감싼 프라이 누들, 얇고 흐물거리는 만두피..
Meadowbank park 에서 직장 상사이자 신랑 친구인 H씨가 대접해준 호주 와규. 와규는 일본 한우 같은건데 그 종자를 수입해서 청정호주에서 키우니 더 맛있어졌다는 후문과 함께 공원 비비큐 스팟에서 꽃살, 갈비살, 살치살을 가뿐하게 클리어! 시티의 집들은 길가라 그런지 언제나 이중으로 문이 되어있는데 그 모양이 같은 게 하나도 없어서 집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제는 주말답게 보냈다. 프리마켓가서 향초도 사고 구경도 좀 하다가 저녁엔 친구 커플과 친구와 함께 공원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저녁엔 냉장고 채우러 시장도 다녀왔다. 오늘은 더욱 주말답게 늦잠과 아점, 동네 산책으로 마무리. 깜빡 잠들었는데 곧 이어 신랑도 잠 들고 생각보다 오래 자는 바람에 성당에 못갔다. 그거 하나는 실패 T_T 그래도 ..
내가 일한지 오늘로 열흘, 동료들이 평소보다 일이 늦게 끝나기 시작한지도 열흘 째다. 어제가 쇼핑데이라서 바쁘기도 했지만 이 정도되니 오늘 아침엔 목도 깔깔하고 속도 쓰리고 게다가 손바닥이 아프다. 몸살을 하면서 손바닥이 아프긴 처음인데 이게 이 직업이 내게 주는 새로운 종류의 감각, 통증인가보다. 오른쪽 세번 째 손가락 밑에 도톰한 부분하고 엄지 손가락에서 손등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묵직하게 저리면서 근육이 수축되는 듯한데 어떻게하면 풀리는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늘 파이퍼백을 쥐어짜고 반죽이 든 무거운 트레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주다보니 그런 거 같은데 수축했으니 이완을 시켜줘야 하는게 이론 상 맞는데 손바닥을 어떻게 이완시키지. 얼른 일하는 속도가 빨라져서 오늘은 제 시간이 끝나야 애들도..
고등학교 때만 해도 머리색이 밝다고 지적 당해서 검정색으로 염색을 했었는데 어느 날부터 머리가 왜 이리 새카맣지 할만큼 까매졌다. 까만 머리보다 원래 내 머리 색이 나한테는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왜 변한걸까 하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염색 하기도 귀찮고 머리도 상해서 결혼 이후 싹뚝 자른 머리를 얌전히 기르는 중이었다. 한참 못생김 존을 지나서 쑥쑥 자라서 어느 덧 어깨를 스치는 머리들을 보니 어라? 다시 머리 색이 변했다. 꼼꼼하게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햇빛이었다. 햇빛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머리가 탈색이 되는 모양이다. 엄마는 나의 파란 눈과 갈색 머리카락을 좋아했는데 엄마가 좋아하던 시절의 내 모습이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고 엄마가 보고싶다. 이렇게 잘 지내고 ..
오늘은 두번째로 집값을 내던 날. 집에 돌아와 집주인 어르신들하고 뒷 마당에 앉아서 맥주도 두 캔씩 마시고 복권과 국내 여행과 스테이셔너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우리를 이모, 이모부라고 부르는 살가운 주인 댁 딸 덕분에 우리에게 더 잘해주시는지도 모르겠다. 그 밖에도 신랑의 면접이 하나 있었고 그럭저럭 나는 혼자 일을 해낼 수 있었고 H씨네 집에 곤란한 일이 생겨서 모두 일하고 난 다음의 피곤한 모습으로 쇼핑 센터를 한참을 돌아다녔다. 저녁으로는 생소한 인도네시아 국수를 먹었다. Har mee 하미하고 뭐더라, 다락 자락. 일하고 난 다음에 나는 냄새들, 사람들의 분주한 소리 속에 진공 같은 것들. 그런 것과는 반대로 여기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건 변하는 저녁 하늘 색깔, 시원한 바람. 기억을 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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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몹시 피곤하여 먼저 잠을 잤는데 약간 선잠이었는지 잠꼬대를 했다고한다. 평온한 얼굴로 자는 내가 갑자기 "예쁘다, 진짜 예쁘다!" 라고 해서 신랑이 자다 깼나 싶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뭐가? 뭐가 예뻐?" 하고 질문했더니 "신랑이 예쁘다." 라고 하고는 계속 잤다고 한다. 신랑이 어제 이랬다고 기억나냐고 묻지만 나에게는 기억이 없다. 몽유병인지 잠꼬대인지 가끔 설잠을 자면 묻는 말에 대답하곤 하는데 어제는 꿈도 안꿨는데 왜 갑자기 감탄사를..신랑을 내가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있음을 무의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덤덤하게 살아도 신혼은 신혼이었군.
7년이라는 시간을 남의 돈 받으며 일하러 다니는 동안 2시간 거리 출퇴근에도, 말도 안되는 폭설이 와도 세 손가락에 꼽을만큼 밖에 지각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 지각하고 말았다. 그것도 말도 안되게 알람이 안울려서 ㅠㅠ 9시 출근 같이 정상적인 시간이었다면 그럴 리 없었겠지만 7시까지 가야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 한 시간을 지각하고 첫 날보다 한 시간 빨리 끝났다. 대부분의 구체적인 일의 방법은 기억났다. 몸이 기억한다는 것은 이런걸까. 하지만 무엇부터 왜 해야하는지 전체적인 프로세스하고 반죽 종류 이런 건 아직도 어렵다. 뭐, 당연한거지만. 월요일만 트라이얼이고 오늘 일한거 부터는 트레이닝 시급을 준다고 한다. 첫 월급으로는 뭘 하면 좋을까? 이 일을 하면서는 영어가 안늘거 같은데 적응되고나면 다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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