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마지막 날이고 일년의 반이 지나간다. 더불어 살던 땅의 반대 편에 온지도 오개월에 접어들었다. 막연하게 나마 어떻게 살자고 말은 하고 있는데 그게 과연 최선인지 모르겠어서, 분명히 제법 괜찮은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노력할 마음이 아직 들지 않는다. 장래희망 비슷한 걸 떠올리면 나는 몇 번이나 차선을 선택했다.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해보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하는 것 사이에서 해야하는 걸 선택했다. 해야하는 것에 마음을 붙이고 자부심을 가지고 싶었으므로 할 수 있는만큼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선책에 최선의 노력이 쏟아지지 않는다. 물론 모든 일에는 기본이 중요하니까 하고싶은 일이나 해야하는 일보다 앞서 우선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걷기 전에 뛸 수는 없는 법. 걷기 위해..
시간이 참 잘도 간다. 6월인 것도 믿기지가 않는데 다음 주면 7월이라니. 여전히 멍하게 지내고 있다. 새로산 토너 냄새가 너무 좋다. 매일 아침 저녁 뜨거운 물로 씻고 얼굴을 닦아내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말갛고 뽀득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침 저녁으로 뜨거운 보리차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여름이 지나서인지 탄산수도 시들해지고 그렇다고 맹물은 여전히 안먹히고. 귀찮은 만큼 부지런히 움직일 때만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과연 이사가게 될 것인지? 낡았지만 단정한 모습은 마음에 들었지만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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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뒤 일찍 찾아온 어둠, 이렇게 채도가 없는 풍경 속을 걷기는 처음이었다. 흑백 필름을 끼고 사진을 찍는다해도 이렇게까지 완벽히 색이 없는 모습은 만나기 힘들 거 같다. 밤이긴 했지만 아직 짙은 어둠으로 뒤덮이기 전, 공기 중에 물기가 많아서 안개 속의 새벽 같기도 하고. 어두움은 보통 추움을 떠올리게 하는데 안개 때문에 따뜻한 밤이었다. 커다란 어둠의 진공 속을 걷는 기분. 풍경이 달라진다고 해서 길을 모를리는 없지만 줄곧 보던 장소가 이렇게까지 다른 모습으로 보인 건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먹고 산 기록들. 매일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하는 일은 밥을 해먹는 일이다. 확실히 나는 외식보다는 집에서 먹는 밥을 좋아하는 것 같다. 편하고 건강하고 비싸지도 않고 제대로 사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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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까지만 해도 캥거루도 보러 다녀오고 시티도 구경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데이오프를 보냈는데 이번 주는 아마도 피로가 쌓였었는지 늦잠, 동네, 늦잠, 옆동네, 늦잠, 집. 이렇게 마무리했다. 일요일엔 흐리고 비가 왔다. 빗소리를 들으며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나 신랑이 차려주는 점심을 먹고 무척 마음에 드는 수영복을 아주 우연히 싸게 사서 기분이 좋았다. 느즈막히 한인성당에 다녀왔다. 신랑은 요즘 요리에 부쩍 재미를 붙이고 있다. 손에 습진이 생겨서인지 집안일도 도맡아 해주니 참 고맙다. 늘 여유롭게 지내고 있지만 쉬는 날에 무언가 하지 않고 지내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미사였고, 오랜만에 또 한국말로 말씀을 들으니 좋았다. 공교롭게도 부활과 승천 대축일에 미사를 가서 그런지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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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사람들만의 특권이겠지. 계속해서 기억할 수 없으니까 기념일 같은 걸 만들어서까지 기억하려는 거겠지. 함께 있어서 기쁘고 언젠가는 혼자가 되더라도 기억할 수 있다면. 날씨만큼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봐서 행복했던 날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졌던 가족이 우리 인생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점유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 처럼 두 사람이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신혼 시기에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보내는 지금 시간들이 나중에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 거리가 되어줄까?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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